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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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촌

2021-07-24 (토)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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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질 무렵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밖을 살짝 내다보니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무언가를 들고 서있다. 새로 이사 온 집에 낯선 사람이 찾아오니 경계심이 들었다. 누구냐고 물어보니 옆집에 사는 사람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얼른 마스크를 쓰고 문을 열었다. 이 집에 이사 온 것을 축하한다며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며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나는 얼떨결에 선물을 받아 들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등에 업힌 아이가 보채는 바람에 제대로 대화도 나눠보지 못하고 들어 왔다.

받아 든 케이스를 열어보니 직접 만든 컵케익이 먹음직스럽게 들어 있었다. 작은 카드도 함께였다. 카드에는 이웃으로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쓰여 있었다. 조그마한 아이와 혼자 하루 종일 고군분투하느라 심신이 지쳐 있었는데 이웃의 사려 깊은 선물에 마음이 환해졌다. 컵케익 한입 베어 무니 달콤한 초콜릿 아이싱과 폭신한 빵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하루의 피로를 싹 풀어주는 것 같았다.

좋은 이웃을 만난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이사 오고 나서 집 정리하느라 바빠 이웃들에 제대로 인사도 못했는데 나도 조만간 정식으로 인사를 해야겠다. 이제야 이웃집들도 눈에 들어온다. 정원관리를 끝내주게 해 놓은 오른쪽 집, 차가 많은 것으로 보아 대식구가 사는 것 같은 왼쪽 집, 앞집에는 고양이 서너 마리가 마당에서 햇볕을 쬐고 있다. 집 앞으로 산책 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동네에 딸아이 또래의 아이들도 몇 명 보이는 것 같다. 아이가 조금만 커서 나가 놀기 시작하면 동네가 시끌벅쩍할 것 같다.


페이스북에서 동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가입했다. 이웃끼리 안 쓰는 물건들을 나눔 하고 부모들은 육아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나도 화분 나눔 하는 이웃에게서 선인장도 얻어 오고 어떤 한국 가정에서 딸아이의 한글책도 얻어 왔다. 저번 달에는 좋아하는 허브인 바질도 얻어와 샐러드도 해 먹었다. 바질을 나눠준 이웃은 바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다. 며칠 전 다시 연락해 바질을 또 받을 수 있겠냐고 물으니 흔쾌히 오라고 했다. 문 앞에 걸린 바질 든 봉투를 가져오고 나는 준비해 간 디저트를 놔두고 왔다. 나도 조만간 작아진 아이 옷을 나눔 하려고 챙기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소통하지는 못하지만 이웃 간의 정을 나눌 수 있어 즐거운 나날이다.

컵케익을 가져다 주신 옆집 아주머니께는 고심하다 라벤더 화분을 사서 예쁜 감사 카드와 함께 가져다 드렸다. 얼마 전에는 두부 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두부를 박스째로 가져다주어 옆집에도 나누어 주었다. 받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것도 참 기쁨이다.

아이와 동네 산책길에 나서면 이제 인사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다. 아직은 마스크 너머로 멀찍이서 눈인사를 주고받는 게 다이지만 언젠가 코로나가 종식되고 다시 예전처럼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면 서로 환하게 웃으며 인사할 수 있겠지. 옆집 이웃을 집으로 초대해 티타임도 가질 수 있겠지. 딸에게 ‘이웃사촌’의 뜻을 설명하는 날이 오겠지. 그때에는 아이도 훌쩍 커서 이웃집 아이들과 함께 걱정 없이 뛰놀 수 있기를 바란다.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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