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나는 강아지를 키우는 가정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티비에 나오는 강아지가 있는 집은 언제나 화목했고, 웃음으로 가득 찼으며 활기가 넘치는 가족이었다. 그에 비해 부모님이 모두 일을 하셔 항상 조용했고 쓸쓸한 공간이었던 우리 집을 어린 나는 견디지 못했고,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만이 그 공허한 공간과 마음까지 채워줄 것 같았다. 몇 달을 조르고 졸라 한 강아지를 데려왔고, 동생과 나는 준비없이 그렇게 새 식구, 우람이를 맞이해 버렸다.
처음엔 그저 함께 하게 된 반려동물이 생겨 신기하고 또 행복한 마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곧 반려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은 훨씬 더 크고 많은 변화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아지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우리는 배변 훈련부터, 동네 산책 시키기까지 모든 것이 서툴렀다. 그리고 곧 허무하게도, IMF 이후의 불황과 함께 부모님의 사업이 점점 내리막길로 내려가면서, 우리의 첫 반려동물은 나와 작별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다른 가족에게 맡겨졌다. 우리가 해준 것이라곤, 콘크리트로 뒤덮인 아파트 주위를 산책하는 것, 맛있는 간식을 주는 것, 가끔 부모님이 데려다 주신 바닷가를 걷는 것 밖에 없었기에, 그 후 많은 날을 죄책감과 함께 살았다. 온전히 나의 이기심과 철없는 생각으로 자그마한 생명체의 삶과 행복을 내 마음대로 부리고 져버렸다는 생각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죄책감은 한동안 ‘나는 누군가를 보살필 자격이 없다’는 생각으로 내 안에 남았다. 평생을 반려 동물과 함께 생활해온 남편과 시댁을 만나고 나서야, 나의 과거의 잘못은 정성을 다해 새 생명을 보살피는 것으로 갚아야 한다는 부채의식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리하여 나는 6년 전 뽀삐를 만났다. 그리고 우리 집은 뽀삐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물론이고, 뽀삐가 하루 2-3번 산책 가는 시간에 맞춰 우리의 오전, 오후 스케쥴을 맞춘다. 집을 구할 때 1순위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공원이 있는 지의 여부였으며, 뽀삐가 먹는 사료가 리콜이 되지는 않았는지 항시 눈여겨 본다. 휴가, 여행 역시 뽀삐와 함께하고, 뽀삐를 놔두고 외출할 때면, 혼자 있는 시간이 6시간이 넘지 않도록 한다. 밤 9시가 되면 침실에 가서 일하라며 칭얼대기에 그 즈음엔 굵직한 일들은 이미 처리해놓아야 한다.
6년이란 시간을 같이 보내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많은 것을 읽어내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의 언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눈빛과 몸짓을 읽을 줄 알게 되었고, 그 사이 흐르는 침묵의 언어를 배우게 되었다. 서로의 얼굴에서 다양한 표정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서로의 신체리듬은 물론, 기쁠 때는 함께 축하를 하고, 슬플 때는 “괜찮아” 하고 위로를 건네며 조용히 옆에 기댄다.
나보다 더 작고 약한 동물과 삶을 공유한다는 것은 이렇듯 손도 마음도 많이 가는 일이다. 하지만, 사랑은 늘 그렇지 않던가? 손이 가는 일을 나서서 하게 되고, 그것으로 기쁨을 느끼게 되는 그런 일 말이다. 내 일상에 많은 것들이 제약이 있지만, 그것들을 더이상 제약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뽀삐가 없었을 때 보다 뽀삐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된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내가 우람이와 뽀삐와의 생활을 이토록 길게 쓴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쉽게 결정하고 끝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뉴스에서 개를 로드킬 시키거나 차에 매달고 달리는 등 각기 다른 종류의 학대 영상들이 쉽게 등장한다. 동물 보호법이 제정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학대와 유기는 여전히 큰 문제로 남아있고, 어떤 행동이 학대 인지에 대한 인식은 천차만별이기도 하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부분은, 다른 생명체의 존재를 인정,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모색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안에서 반려 동물을 버리지 않는 것, 지켜내고 함께 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일 것이다. 보살펴주고, 알아봐주고, 곁에 있어주면서 넓고 깊어지는 삶은 그 또한 품과 노력이 든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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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휴스턴대학교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