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 나무의 자서전
2021-07-12 (월)
이은정/시인
넓은 정원에 화려한 옷 입은 꽃들
금수저 은수저 비녀를 꽂은 채
굵직한 스펙 꿰어 목에 걸고
봄의 향연을 즐긴다
그 한가운데 톱으로 허리가 잘려져
휑하니 빈 의자처럼 서있는 나무 한그루
집주인이 예쁜 꽃들에게 그늘이 된다며
싹뚝 잘라버렸다
꿈을 안고 한껏 자라는 삶
하루 아침에 해고통지를 받았다
물도 흐르다 바위를 만나면
잠시 기대어 쉬었다 흐른다지
젖은 적막 깨고 독백을 반복한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거야’
봄볕 한줌 한줌 긁어모아
굳어진 피부에 밀어넣는 나무의 자세
초록근육 조금씩 조금씩 잎을 내더니
시선 강탈하는 분재로 거듭나
우뚝 서있는 정원의 모델
나무는 켜켜이 쌓인 페이지 넘기며
해맑은 햇살 아래 자서전을 읽고 있다
<이은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