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녁 산책은 나의 새로운 루틴이다. 특히 집 근처 공원에서 자주 산책을 한다. 개울을 따라 길고 곧게 이어진 길이 걷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올 봄에 태어난 새끼 거위들이 공원 여기저기 쏘다니는 모습을 보러 자주 방문하는 편이다. 공원에서 한 시간 정도 걸으면서 과열된 머리를 식히고, 시끄러운 마음을 비워내고, 매일 다른 빛으로 물드는 하늘을 감상하고 나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그러다 몇 주 전 사건이 하나 있었다.
여느 때처럼 산책을 나갔다가, 오랜만에 거위 가족을 만났다. 새끼 거위들은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 했지만, 그새 키는 어미만큼 자라있었다. 몇 발짝 떨어져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저쪽에서 자전거 한 대가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새끼 거위 한 마리가 길 가운데 서있는게 신경쓰였지만, 멀리서도 잘 보이는데다가 자전거가 비켜갈 공간이 충분했기에 설마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자전거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내달려서 그 새끼 거위를 그대로 밟고 지나갔다.
교통사고의 순간을 목격한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어미 거위는 사납게 울아댔고, 새끼 거위는 다리를 다쳐 일어나지 못 했다. 그때 나는 자전거 라이더 때문에 더 혼란스러워졌다. 분명 거위들을 봤을텐데. 분명 순간적으로 자전거가 덜컹 했을텐데. 그가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뒤로 안 돌아보고 달려가던 그의 모습에서 사고를 피하거나 수습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다는 점은 분명했다.
다친 새끼 거위가 일어서려다 쓰러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여러 사람이 옆을 지나갔다. 보통 때였으면 나 역시 지나쳤겠지만, 이번만큼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마침 트럭을 몰고 퇴근 중이던 공원 관계자를 기적처럼 만나서, 함께 다친 새끼 거위를 구조해서 트럭에 태워보냈다.
날은 어두워졌고, 마음은 가라앉았다. 불현듯 그 자전거 라이더가 정말 새끼 거위를 보고도 치고 갔다면, 정말 그럴 목적으로 그랬던 거라면, 몇 발짝 옆에 서있던 나를 치고도 유유히 지나갔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대상이 동물인지 사람인지를 떠나서, 다른 존재를 일부러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이, 또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점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올해 미국 곳곳에서 아시안계를 향한 혐오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길을 걸어가다가 다른 행인에게 가격을 당하기도 하고, 자전거를 몰고 가다가 굳이 자전거로 뒤따라온 괴한이 휘두른 칼에 부상을 입는 사건도 있었다. 굳이 특정 소수 집단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대상을 가리지 않는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혐오는 사실 인류의 역사 속에 늘 있어왔다.
점점 더 바쁘고 각박해지는 이 세상에서, 인류애를 외치며 과장된 ‘휴머니즘’을 기대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판타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나로서 거울 앞에 섰을 때 일그러진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그저 내 앞길 만이라도 잘 살피며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내 길 위에 뭔가 거슬리는게 있다면 살짝 피해가면 되고, 혹여 미처 피해가지 못 해서 상대를 다치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하면 된다. 단지 이만큼의 휴머니즘은 발휘하면서 우리가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그날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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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정 페이스북 프로덕트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