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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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사랑의 연못

2021-06-23 (수) 이소영/레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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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예쁘게 갓 태어난 딸을 가슴에 안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난다. 자라는 딸의 이모저모를 사진과 영상으로 열심히 찍었고 아이의 삶을 이야기해주는 여러 스크랩을 부지런히 수집하였다. 고르고 골라서 꼭 의미있는 것 몇 개만 간직하겠다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세월의 무게가 쌓이면서 파일들도 너무 많이 늘어나서 관리하기 힘들어졌다. 나의 영혼이 담긴 유일한 보물상자였기에 관리하기 버겁다고 버리기는 무척 아까웠다.

그런데 가장 큰 가슴앓이는 정성을 다해 수집해놓은 모든 것에 대해 딸이 시큰둥하다는 것이었다. 마치 쓰레기 모아놓은 것으로 여기는 듯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다. 나는 골똘히 생각했다. 나로서는 이해불능이지만, 지난날의 여러 기록들에 별 관심이 없는 것은 그녀의 자유인 것이다. 이제 상처 난 마음을 다독이면서 이 상황을 쿨하게 받아들이기로 생각을 정리하고 매듭지었다.

그러나 딸은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그렇지 않을 권리가 있다. 나는 가끔씩 지난날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서 추억에 잠기고 싶다. 나에게는 둘도 없는 소중한 보물들을 마지막으로 총정리하기로 결심하였다. 옛날에 비디오테이프로 찍은 것들을 모두 디지털로 바꾸고, 가능한 한 중요하고 의미있는 부분만 세이브 하는 편집 작업을 하였다.


이렇게 편집 영상작업을 하고 있는데 성인이 된 딸이 어깨너머 보면서 놀랄 만큼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전에는 많은 에너지를 투자해서 만들어놓은 기록들이 괄시받는 모습에 나의 부풀었던 기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었다.

그랬던 딸이 놀랍게도 여러 장면들을 스마트폰으로 캡처해서 혼자서 매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여러 번 보는 것이었다. 뜻밖에 보는 감개무량한 반응이었다.

그 후 딸은 가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동영상에서 본 장면들을 이야기한다. 삶의 아름다운 조각들이 연결되어 사랑의 연못이 만들어지고, 예쁜 연꽃들이 피어난다.

<이소영/레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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