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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끝자락에 급증하는 총격사건

2021-06-23 (수) 석인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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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동네에서 밤 운전을 하는데 옆 차량이 빵빵 클락션을 울렸다. 순간 흠칫해 몸이 굳은 상태로 소리가 들려온 곳을 흘끗 쳐다봤다. 설마 날 부르는 게 아니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용기를 내 고개를 돌렸더니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긴장해 움츠러들었던 어깨에서 힘이 빠지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휴, 살았다.

그저 경적 소리였을 뿐인데도 극도로 긴장했던 이유는 최근 들어 남가주에서 무차별 차량 총격사건이 자주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한 달간 차량 총격 기사만 몇 번이나 다뤘는지 모르겠다. 기사를 쓰다 보면 나와 내 가족, 지인들도 운이 나쁘면 운전을 하다 어디선가 날아오는 총탄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지난 21일 보복운전 총격사건으로 6세 남아 에이든 리오스가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본보 5월24일자 보도>가 발생해 세간에 충격을 자아냈다. 당시 프리웨이에서 차선을 변경하려는 리오스의 엄마 앞으로 하얀색 세단이 끼어들었다. 이에 리오스의 엄마가 차선을 변경해 따라잡고 세단 운전자를 향해 욕설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세단 조수석에 타고 있던 남성이 총을 쐈고, 총에 맞은 리오스는 세상을 떠났다.


6세 소년이 하루 아침에 숨진 이 사건은 지역 주민들에게도 큰 상처를 입혔다. 지역 단체들과 수퍼바이저 사무실 등은 후원금을 모아 용의자를 잡기 위한 현상금을 50만 달러까지 올렸고, 여러 목격자들의 제보 끝에 경찰은 2주 만에 용의자인 20대 커플을 체포했다.

이외에도 지난 한 달 간 남가주 곳곳의 프리웨이에서 무차별적인 차량 총격사건은 잇따라 발생했다. 경찰은 프리웨이에서 아무 차량이나 대상으로 BB건 총격을 가하는 일이 일종의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고 판단해 사건들의 연관성에 대해 수사 중이다. 하지만 한국처럼 CCTV가 곳곳에 설치돼있지 않은 환경에서 주민들의 제보에 기반해 용의자를 추적하기 때문에 수사 진척이 더디다.

엎친 데 덮친 격은 미 전역에서 총기사고도 연일 기록적으로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총기 폭력 아카이브’(GVA)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월까지 미국에서 총 8,100여명이 총에 맞아 숨져 하루 평균 54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경찰 당국과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대유행에서 벗어난 미국이 총기폭력을 앓고 있다며, 피 바람이 부는 여름이 올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백신 접종과 함께 코로나19 확산세가 누그러지면서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GVA 설립자 마크 브라이언트의 “올해는 총격사건의 기록적인 해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빗나가기 만을 바랄 뿐이다.

<석인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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