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아시안 증오범죄 소식이 들려온다. 미 동부의 뉴욕과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내가 사는 LA에서도 종종 일어나고 심지어는 한인타운에서 대낮에도 일어난다. 그래서 외출하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조심하라고 일러주곤 한다.
일년 전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경찰관의 가혹행위로 목숨을 잃은 후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BLM 운동이 일어난 일이 눈에 선한데, 이제 어떤 연유로 한순간에 아시안 특히 한인까지 증오의 대상으로 삼아 표적 공격을 일삼게 되었는지 기가 막힌다. 비디오를 보면 공격하는 사람이 온힘을 다해 가격을 하는데 졸지에 아시안 피해자는 한방에 길바닥에 나가 떨어져 쓰러진 채로 꼼짝달싹 못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섬뜩해진다.
이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아시안과 한인들을 증오할리는 만무할 것이다. 그 까닭을 알아보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할일이 매우 시급하다.
커뮤니티 차원에서 한인단체들이 발 빠르게 미 당국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하고 아시안 증오범죄 방지법도 만들어졌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어느 인종이 타인종을 차별하고 싫어하며 배타적인 감정을 넘어 물리적 공격을 가할 정도로 악화된 상태를 하루아침에 법을 제정한다 한들 실효성이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로 이해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우러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대책은 어려운 일로 보인다. 여기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박애다. 넓은 의미에서 배려와 관용과 사랑이다.
박애란 말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상징인 삼색기의 자유와 평등과 박애에서 선명히 드러나는 의미를 일컫는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시민들이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며 세가지 원칙이 함께 작동하는 나라를 만들려고 했는데 아마도 이것은 인류가 생각해낼 수 있는 최선의 국가이념일 것이다.
요즘 미국과 한국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 투쟁이 극에 달한 듯해 보인다. 미 공화당과 민주당은 격렬한 투쟁 끝에 정권이 교체되었는데 아직도 서로의 앙금이 풀리지 않고 정치인이 아닌 일반시민들도 패가 갈려 서로 지지성향에 따라 왈가왈부하며 상대방을 공격한다. 한인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까딱하면 논쟁에 휘말려들어 감정을 상하는 일이 비일비재다.
한국에서 오는 소식을 보아도 같은 형편이다. 보수와 진보의 논쟁은 태평양 건너 재미한인들까지도 모국의 영향으로 서로 지지성향에 따라 상대방을 평가하고 판단하여 무리짓기 일쑤다.
한인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갈수록 첨예화되고 있는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상이다.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서 소수민족들과 연계하여 주류사회를 향하여 매진해야 할 한인사회가 이념논쟁으로 갈라지는 일은 한인사회의 미래와 후세들을 위하여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쉴새없이 사색하며 새로운 개념과 조어를 만들어낸 폴 틸리히는 시계가 살아 있으려면 시계추가 좌우로 끊임없이 움직여야한다고 말했다. 어느 한쪽에 머물러있는 시계추를 상상할 수 없고 중간에 머물러있는 시계는 죽은 것이다. 모름지기 시계추는 움직여야 한다.
박애는 상대를 의식하고 이해하며 움직이면서 감정을 이입하고 사랑의 마음을 서서히 키운다. 그리고 연합한다. 보수와 진보의 가치는 자유와 평등으로 요약되는데 이것들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가치이고 박애는 이 둘을 아우른다. 자유와 평등과 함께 박애가 반드시 있어야한다. 북한이 연초에 개정한 당헌은 민족통일보다는 남북 2국가체제를 염두에 둔 것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느 세월에 우리 한민족이 동방에 우뚝 서는 날이 올 것인가.
당면한 증오범죄, 정치판도, 남북관계도 삐걱거리고 있다. 피아를 넘어선 적십자정신이 박애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 이젠 박애를 말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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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남 광복회 미국서남부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