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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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無用)한 것들에 대하여

2021-06-12 (토) 이미경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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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오늘’은 생산적이거나 효율적인 것, 그리고 합리적인 것들과 유용한 것들만 선호하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도 생산성이 떨어지면 애초에 만들지 않는다.

효율성은 모든 것들을 표준화하여 어느 쪽에도 맞지 않는 옷처럼 되어 버렸고 합리적인 판단에 위배(?)되는 행동은 어리석거나 무지한 것들로 치부되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을 좀 더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이 무익한 것들,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비합리적이고 무용한 것들로 이루어져있다.

예를 들어 늘 봉사하고 남에게 베푸는 사람은 생산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대부분의 예술 활동은 합리적이기는커녕 무익하기 일쑤다. 그리고 깊이 ‘사유’한다는 것 또한 재화의 창출과는 무관해 보인다.


이러한 것들은 당장에는 무용해 보일지 모르나 삶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귀한 것들이다. 쳇바퀴 굴리듯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용한 것들은 거친 숨을 고르게 하고 바삐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어 서게 한다. 분주한 마음을 가라앉게 해주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정화시켜준다.

어제 뒷마당에 심어놓은 꽃에 물을 주려고 하는데 며칠 집을 비워 놓은 사이에 바닥 콘크리트 틈에서 자란 민들레가 꽃을 피웠다. 이 작은 민들레 한 송이가 그 틈을 어떻게 비집고 올라왔을까? 굳이 그렇게 열심히 살아내려고 하는 이유가 뭘까?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고 사람 눈에 걸리면 뽑혀질 텐데도 민들레는 그저 자신의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민들레 꽃 하나가 굳었던 나의 사유의 세계를 다시 열어주고 확장시켜주며 거친 나의 호흡을 쉬게 해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무용한 것들과 좀 더 친해져야한다. 우리 모두 어린 시절로 돌아가 우리가 사랑하고 좋아했던 무용한 것들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창고에 묵혀놓은 붓을 꺼내 마당에 널브러진 이름 모를 들꽃을 그리거나 아이들과 숨을 헐떡이며 술래잡기를 한다거나 괜시리 옆집 사람에게 말을 걸어본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다시 상상력 풍부한 동화책을 읽어보아도 좋고 흘러간 음악을 다시 들어도 좋고 옛 친구에게 전화걸어 안부를 묻는 것은 어떨까?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이러한 무용한 일들을 잊지 않고 해 보는 것. 이것이 우리를 사람냄새 나게 하고 웃게 하고 만족하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무용한 생각을 해본다.

<이미경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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