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음악을 좋아하십니까? 아니 음악이란 과연 무엇일까? 수없이 해 온 질문이지만 음악이란 어쩌면 ‘아름답고 슬픈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음악이 아름답기만 하고 슬프지 않다면 음악을 그렇게 좋아할 수 있었을까? 또 음악이 슬프기만 하고 아름답지 않다면 음악을 그렇게 좋아할 수 있었을까? 음악은 마치 인생처럼 아름답고 슬픈 것이다. 아니 생존하는 모든 것이 한때의 신기루일 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도 제 아무리 즐거운 것도 모두 헛된 종말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이 순간을 살아야 하며, 이 순간이 가장 젊고 아름답다고 노래한다. 청춘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순간만 알고 종극을 모른다면 그 또한 비극이다.
이 세상에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많은 사람들은 돈 많은 사람… 지식이 풍부한 사람, 모든 것을 갖춘 사람들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행복한 사람이란 어쩌면 하산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하산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도 닦기를 끝낸 사람, 높고 험준한 산을 정복한 사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소유의 삶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모두 여유있고 행복한 영혼일 수밖에 없다. 특히 높고 험준한 산일수록 또 그 가치가 크고 귀중한 것일수록 그것을 놓았을 때의 해방감, 하산할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인간이 가장 감동할 수 있는 순간이란 극도의 어려움 속에 만난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 유대인들은 아우슈비츠 같은 수용소에서도 바이올린 등을 키며 절망을 달랬고, 또 이때 들은 동료의 바이올린 소리만큼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소리는 없었다고 고백하곤 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갖는 잠깐의 휴식, 역경 속에서 들려오는 음악의 그 아름답고도 슬픈 모습이여…
인생에서 음악은 마치 흑백 필름에 색감을 덧입히는 것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총천연색 상상을 가능케 하는, 마음속의 물감 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냥 노을이 지는 저녁과 멀리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 올 때의 저녁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음악이야말로 삶의 2% 모자란, 감성의 완성체로 향하는 마술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삶에서 음악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전염병, 경제적인 상처, 현실적인 문제들이 삶을 압도하는 세상에서 음악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걱정, 불안 등으로 뒤틀린 세상에서 음악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음악이 과연 우리들의 아물지 않는 상처에 무한한 치유를 줄 수 있을까? 제 아무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대답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도 현실이 무시될 때 그 자체로 하나의 사치일 수밖에 없다. 마치 영화 ‘앨비라 마디간’ 속의 주인공들처럼 사랑이 아무리 아름답고 영화 속의 배경음악이 아름답다 해도 현실이 없는 사랑, 현실이 없는 예술이란 비참한 종말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다만 생이 아무리 비장하고 현실이 중요하다고 해도 등산만 있고 하산이 없는 인생처럼 비참한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음악을 가장 사랑해 온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이었다. 그들이 결코 남보다 행복하고 여유가 있어서 음악을 좋아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삶이 고달프고, 오랜 세월의 방랑과 고난을 겪었기에 깨달은 지혜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인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 떠가는 나그네와 같다. 결코 서두를 필요도, 바삐 가야 할 필요도 없다. 서두르는 자는 필패할 것이라고 도꾸까와 이에야스는 말했지만 여유라는 감정은 결코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음악을 삶에서 등산이나 지식의 습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작업이기도 하다. 돈과도 무관하며 많은 경우 직업과도 무관하다. 어떤 생산성이 있는 것도 아니며 음악을 업으로 하여 산다고 해서 크게 존경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과는 무관하게 음악은 영혼에 여유를 준다. 숨돌릴 틈 없이 바삐 돌아가는 인생의 수레바퀴 속에서 음악은 월척을 낚는 것도 권력을 쥐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음악은 세상이 주지 못하는 저녁 노을의 뒷편, 신비롭고도 아스라히 사라지는 피안의 세계가 있다. 현실의 욕구, 가나안 복지로 향해 전진하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인생은 때때로 광야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그 속에서 영혼의 절규, 삶의 진정한 모습과 신을 발견하길 바라는 것 또한 음악이 말하려고 하는 여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철학자 니체는 음악이 없는 인생을 ‘mistake’라고 했다. 팬데믹이 할키고 간 빈자리… 오늘 이 순간이 인생 속에서 가장 무의미하고 절망처럼 느껴진다면, 마음의 턴테이블을 올려놓고 베토벤의 그 장엄한 음향이 울려오는 산 너머 낙원으로… 한번 하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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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