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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에세이] 부서진 심장

2021-06-11 (금)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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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데스크 탑 컴퓨터 홈 페이지에 강아지, 조지의 사진이 떠있었다. 작년에 먼 곳으로 이사할 때 짐이 많아 데스크 탑을 버리고 온 후로는 조지를 자주 볼 수 없다.

직립보행을 하는 인류가 나타낸 게 700만 년 전, 돌로 기구를 만들어 사용한 석기시대는 대략 300만년 전부터 8,000년 전까지 계속됐다. 석기시대의 대부분은 구석기 시대로 인류역사의 98-99%를 차지한다.

고대 인류가 개를 가축화한 때가 구석기 끝자락인 1만5,000년 전으로 기록되어있다. 늑대가 무리지어 사냥하고 서로 경계하는 기술을 관찰한 인간이 늑대의 한 종류를 골라 집에서 키워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개는 인간과 함께 지구촌을 이동하면서 계속 살아왔다.


개는 옛적엔 사냥을 돕고 맹수의 침입을 알려주고 먹거리가 부족하면 주인에게 좋은 영양제로 활용되었다. 지금은 우리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주고 덜 불안하게 도와주는 애완과 반려 목적으로 키운다. 그래서 사람과 개 사이의 애착관계는 다른 어느 동물보다 강하게 형성되어있다. 애착이 고착되는 민감한 시기는 종(Species)에 따라 다르다. 사람은 6개월에서 1년, 조류는 생후 16시간 이내, 개는 3~6주 사이다. 이 시기에 사람과의 많이 접촉하지 않은 개는 사람을 피하고 야생동물처럼 행동한다.

내가 조지를 데려왔을 때 조지는 이미 사람과의 애착이 형성되어 별 문제가 없었다. 강아지를 키우며 점점 더 진하게 애착관계는 굳어졌다. 아내는 내가 조지와 시간을 보낼 때 가장 많이 웃었다고 말한다. 조지는 둘째 딸한테 가서 여러 해를 함께 살다가 14살에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사진을 볼 때마다 조지가 죽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는 현실의 진통제 역할을 하는 방어기전의 일종인 부정이다. 조지와 내가 형성한 애착관계 호르몬 옥시토신이 너무 강해 아직도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금년 초 인기가수 레이디 가가의 반려견, 불독 두 마리를 누군가 낚아채어 사라졌다. 가가는 누구든 반려견만 돌려주면 50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 기사를 읽었을 때 오래된 환자가 생각났다.

그는 20대 후반 남성으로 건장한 5살배기 불독을 가지고 있었다. 맥이란 이름의 불독을 그는 강아지 때부터 길렀다. 그는 가끔 맥 사진을 보여주며 겉으론 사나워보여도 싸움을 할 줄 모르는 싸움개라고 자랑했다. 독신인 그에게 맥은 반려자였고 우울증 보조치료제였다. 하루는 그가 아주 지치고 우울한 표정으로 클리닉에 왔다. 가슴이 깨어질 듯 아프다며 피투성이가 된 맥 사진을 내보이며 우는 것이 아닌가. 들려주는 얘기는 대충 이렇다.

투견 노름을 전문으로 하는 갱들이 맥을 훔쳐가 싸움판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맥은 딱할 정도로 싸움을 못해 갱들이 돈을 잃었다. 화가 난 갱들은 3,000달러를 가져오면 개를 돌려주겠다고 협박했다. 경찰에 알리면 맥을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환자는 여자 친구와 친척들에게 사정사정하여 2,000달러를 모았다. 나머지 1,000달러가 더 필요하다는 그를 공개적으로 도울 수 없어 클리닉 몇 사람과 상의하여 조용히 도와주었다.

정신과에서 부서진 심장(Broken Heart) 증세를 가진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부서진 심장증은 실연, 실직, 사랑하는 이의 죽음, 공황장애, 심한 학대, 고문, 노름판의 횡재나 큰 손실 등 극심한 정서적 스트레스나 격렬한 운동, 대수술 후에 찾아온다. 최근에는 반려견의 죽음 후에도 볼 수 있다.

증상은 일시적으로 가슴이 째질 듯 아프고 호흡곤란을 느끼는 등 심장마비와 같다. 심전도를 찍으면 실제로 좌심방의 혈류 펌프작용이 비정상으로 나온다. 진짜 심장마비와 다른 점은 혈관이 막힌 게 아니라 일시적으로 혈류가 적어져 발생하는 증세다. 치료는 별다른 게 없고 환자를 안심시키고 가끔 교감신경의 활성화를 줄이는 메타 차단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만약에 조지가 살아있었을 때 인질로 잡혀 몸값을 요구 당했다면 얼마를 주었을까. 나도 부서진 심장증세를 느꼈을까. 유명가수의 돈만큼 내놓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조지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들의 반려견 사랑과 별로 다를 게 없었을 것 같다.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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