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살 된 조카딸이 94세 이모님께 여쭸다. 지금 지인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나게 됐는데 나이가 여든 한살이래유. 코비드19로 상처를 한 사람인데 45년간 잉꼬부부로 해로한 착실한 남자라는 디.
이모! 어찌 생각하시는 감? 인물도 괜찮고 첫째로 건강한 얼굴 모습만 바라보면 젊은 육십대 저리 가라고 하는데 한 번 만나 볼까요? 앗따! 인물 좋고 건강하고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남정네라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당장 데리고 온나! 아니! 참으로 그런 놈이 있단 말이냐! 야! 여든 한살이면 애숭인데 뭔 걱정이냐! 나 보거라, 아흔 네살인데 신문 보고 책 보며 조카딸 교육시키고 있지 않는 가 말이다.
이게 지금 실제로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 음대에서 피아노 전공, 스물 세살에 결혼, 27년 전 꽃다운 35세 어린 나이에 11살 딸과 8살 아들을 떠맡고 홀로 외롭게 장사를 하면서 두 자녀를 훌륭히 키워 지금은 다 출가해서 한국에서 잘 살고 있는 두 남매의 자랑스런 엄마다.
세 번째 만났을 때 한 얘기다.
‘우선 1주기 기일은 넘겨야겠고 돌아가신 분을 위해 제사를 드린 다음, 생각을 해 봐야겠어요.’
내가 나이가 들다보니, 사망 시에도 그렇고 특히 치매가 왔을 때를 사전에 대비해야겠는데. 사후 혼자 남을 애니씨를 위해서도 그렇고 신탁과 유서를 작성해 놔야겠다. 그럴 경우 회사 연금과 사회보장 연금이 나오니까 양로원 입주금을 지불하고 모자라는 건 주택을 매각해서 충당하고 어쩌고저쩌고 하니.
아니, 무슨 놈의 양로원이냐! 내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죽을 때까지 내가 책임지겠다. 시간제 홈 케어 사람을 쓰고 제가 모실 테니 걱정일랑 마시오!
이게 어디,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것도 아니고 남편이 노망나서 난리굿을 벌이면 한국이나 미국 공히 즉각 양로시설로 처박고 돌아서는 냉정한 현실에서 하는 말이다.
이 얘기를 가깝게 지내는 선배에게 했더니 하는 말, “자네가 생전에 선행을 하고 착실한 삶을 살아온 덕을 보는 것 같구먼. 하느님께서 정말 어여삐 봐 주시는 모양이야. 이제 한숨 놓겠네! 새 제수씨께 잘 해드리게나.”
‘야이,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이게 되는 말일 까 한번쯤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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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원/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