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re you?”
“Fine, Thank you!”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앵무새 창법 영어회화이다. 난 차암~ 궁금하다. 미국사람들은 진짜로 “fine”하지 않은 날이 없이 늘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는 걸까? 거의 매 순간 희노애락이란 감성선 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내가 비정상인가 의심을 하지만, 나도 “How are you?”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앵무새가 되어 “Fine”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궁금함을 못 참는 나는 미국친구에게 물어봤다. “넌, 늘 Fine?” 그 친구는 오히려 한국사람을 나무란다. 원래 지나가는 인사말은 “Hi”정도이고 “How are you?”는 아는 사람 간에 안부를 묻는 말로 상대방이 미주알고주알 답하는 것을 듣기위해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한다는 것이다. 근데 한국사람들은 자기가 지나갈 때 “How are you?”만 던지곤 쌩~하고 듣지도 않고 지나갈 거면서 왜 그렇게 소중한 질문을 던지느냐며 오히려 언성을 높였다.
역시 ‘영어는 본토인에게’를 깨달으며 미국에 왔다. 으음~~ 근데 이건 무슨 상황? 복도에 지나가는 학생이나 교수들이 “How are you?”를 쓴다. 근데 더듬대는 영어로 내 상황을 설명하려고 마음에 준비를 하는 동안 이미 그들은 지나가고 없다. 한국사람 나무라던 미국사람은 어디 갔나? 애국심이 갑자기 치솟는다.
나는 가끔 장애아 부모교육 시간에 따라온 자녀들과 대화하길 좋아한다. 근데 아이와 이야기를 좀 하려들며 부모들의 간섭으로 대화를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내가 “밥 먹었어요?”하면 자녀가 대답도 시작하기 전에 엄마가 “햄버거 먹었다고 말해.”
가끔은 “아! 내가 뭘 먹었는지 메뉴를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얘하고 대화하고 싶은 거니까 우리를 좀 놔두세요.”라고 직설적으로 부모의 간섭을 막아보지만 3초를 넘기지 못하고 무의식중에 또 본인이 대답하고 심한 경우에는 질문을 한 나를 세워둔 채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지 ‘교육’에 들어간다.
아! 이런 이런~ 끊임없는 엄마의 ‘교육열’이 자녀와 나의 대화를 막고, 나 때문에 공연히 놀아야하는 시간에 열공 모드가 되어야 하는 게 미안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곤 한다.
우리 대학에는 근처 특수학교에서 일주일에 두번씩 전환교육 서비스에 있는 16세 이상의 지적장애학생들이 현장학습 및 실습을 한다. 대학 사무실에 가서 중요한 정보가 적힌 서류를 파쇄기에 넣는 작업도 하고 우편물을 학과별로 정리해 배달하기도 한다. 또 교수와 직원들에게 커피주문을 받아 별다방 커피를 배달하는 일도 하고, 열심히 일한 후 학생식당에서 외식을 한다. 음식을 선택하고 돈을 내고 테이블을 찾아 앉아 점심을 하고 대화도 하며 그냥 생활연령에 맞는 대학캠퍼스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
가끔 나는 내 연구실로 가는 길에 그 실습생들과 마주치게 되고 그냥 직접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오늘 하루가 어떤지 묻는다. 교사가 얼른 학생을 잡고 이렇게 저렇게 답을 하라고 ‘교육’을 시작한다. 인솔교사 양반, 자네 내 학생 맞아?
나는 교사와 부모와 이야기하기보다는 학생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냥 평범한 동네사람으로 따뜻한 말을 주고받고 싶다. 동문서답도 좋고 답을 안 해도 좋다. 그냥 눈을 맞추고 서로에게 관심을 주는 것 모두가 ‘대화’의 일부인데 왜 교사와 부모는 ‘정답’을 교육해야만 할까?
사실 정답도 없다. 질문을 한 나도 특정 답을 원하는 것이 없다. 햄버거를 먹었든 피자를 먹었든 그냥 다음 대화로 이어지고 싶다. 맛있었는지, 누구와 먹었는지, 어디서 먹었는지, 다음에 뭐 할건지, 버스는 몇 시에 오는지 등 묻고 싶고 알고 싶은게 많은데 ‘햄버거’ 정답교육이 시작되는 바람에 다른 말은 해보지고 못하고 교육현장을 떠나야한다.
특수교육의 목표는 정답을 내는 기계를 계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동네에서 사람들이 말을 걸고 관심을 갖고 함께 존재하는 것이 먼저여야 하는데, 부모도 교사도 다가서는 사람을 그렇게 막아서면 특수교육에서 갈고 닦은 사회성과 대화법은 언제 실천할 기회가 있을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고 그냥 “말을 해”라고 하듯이 그냥 말을 하게 놔둬주는 것이 교육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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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