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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반려인(伴侶人)이 찾은 단서

2021-06-10 (목) 김영란 (북산책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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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라면 ‘무조건 무조건’인 남편 덕에 개와 가족으로 산 지 40년이 넘었다. 내게는 사람과 꽃, 나무 빼고 움직이면 모두 경계대상이나, 지난 개들과의 추억은 개차반 에피소드조차 그립고 보낸 후의 상실감과 빈자리는 남아있다.

아무리 나이 들어도 강아지인 금이와 옥이 시츄 자매가 우리 가족으로 온 지 13년이 되었다. 옛날 중국 황실에서 사랑받았다는 종으로 늘어진 털이 사자갈기 같다고 사자란 뜻의 시츄라고 불리는데, 둘 다 연베이지에 옅은 브라운이 어우러진 예쁜 몸을 갖고 있다. 넉살 좋은 금이와 새침한 옥이의 성격은 반대지만 평생 다툰 적 없는 순둥이들로, 곱슬머리에 납작 눌린 코와 둥근 얼굴, 짧은 다리에 왕방울 눈이 매력이다. 털도 잘 안 빠지고 좀처럼 짖지 않으며 아파도 끙끙거릴 뿐 인내심도 강하다. 얼마나 우애가 좋은지 하루에도 여러 번, 오래, 정성껏 서로의 귀를 핥아주는 모습은 데면데면한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남편은 자기와 생일까지 같아서인지 ‘우리가 남이가?’ 하며 매일 금지옥엽 화수분 사랑 대방출이다. ‘그 사랑 반만’이라고 말하고 싶다가도, 문만 열면 보여주는 천방지축 충성 세리모니나, 아무리 뭐라 해도 이름만 부르면 곧바로 하늘 향한 꼬리 열렬히 흔드니 확실히 나보다 몇 배는 나아 입 꼭 다문다. 타고난 팔자대로 살게 하자고 교육시킨 적 없으니 손도 못주는 일자무식이지만, 특기와 취미는 확실한 ‘먹기’이고 자랑이라면 ‘솔직한 식탐’이라 하겠다. 수시로 데모하듯 눈앞에 앉아 다리를 살짝살짝 건드리면 간식 달라는 신호이고, 오밤중에 소변보겠다고 번갈아 또각또각 부산떨면 잠귀 밝은 나는 잠 부족에 시달리지만 팬데믹 이후 가장 좋은 친구로 깊은 정이 더 들었다.

평균이라 해도 시츄의 수명은 10년에서 14년이라는데, 귀 먹고 눈 멀어가는 금이와 옥이가 자신이 앞에 떨어트린 간식도 못 찾아 허둥대는 걸 보면 13이라는 숫자만으로도 대뜸 울컥해진다. 이들이 우리의 마지막 강아지라 생각하면 왜 진작 더 보여주고 더 들려주지 못했는지 자책감이 크다. 다행히 아직은 배부르면 드렁드렁 코골다 잠꼬대 늘어지니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기로 한다. 다만 그들의 평생 반려인(伴侶人)으로 멀지 않은 필연적 이별이라는 엄숙한 세상의 질서 앞에, 무기력은 감추고 우리의 하루가 왜 소중한지 그 단서를 찾는다.

<김영란 (북산책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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