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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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자아에게 묻다

2021-06-08 (화) 이미경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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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수록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착한 아이로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 나의 기호는 사람들이 선호하고 부모님과 사회가 좋아하는 것들로 바뀌어 왔던 게 아닌가 싶다. 그 부작용으로 이젠 불혹의 나이를 지나 무엇이든 쉽게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지만 아직도 내가 뭘 원하는지 찾지 못할 때가 많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면 어떤 아이스크림을 먹을지 망설이고, 헤어샵에 가면 어떤 머리 스타일을 할지 계획이 서지 않고, 여행을 가서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보다는 명소와 맛집을 찾는다. 이런 삶이 옳다 그르다 할 순 없지만 이런 혼란 뒤에 허무함이 따라오는 경우가 많았다. 남들처럼 여행을 다니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예쁘게 날 단장해도 마음에 만족함이 없는 이유가 뭘까?

그 많은 것들이 ‘나’다움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의 근원은 사춘기에 끝났어야 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회귀에 있다. 이런 물음들을 통해 언젠가부터 나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일까?’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피하고 싶은 것 등등 다양한 질문을 나에게 쏟아부었다. 그러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나를 불편하게 했던 사실부터 순간순간 기쁨이 넘치던 상황까지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사람들과 나란히 걸을 땐 누군가가 내 오른쪽에 서서 걷는 게 불편하다. 여럿이 대화를 나눌 때 누군가가 화자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굉장히 힘들어 한다. 여행을 갈 땐 내가 짐을 싸야 마음이 편하고 여행지에선 철저하게 동선을 짜놓아 만족스럽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싫어하는데 가족이 모두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기 때문에 늘 한 입 문다는 것과 바닷가에서 해산물을 먹기 원하지만 바다의 짠냄새는 싫어한다는 등등...

내가 나를 돌아보는 재미는 나의 태도를 조금씩 바꾸어 놓기 시작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긴 챙모자를 쓰길 즐기고, 남들이 가지 않는 여행지를 찾아 모험을 나서고, 신학서를 원전으로 읽고 싶은 열망으로 헬라어 공부를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한두 시간은 떨어져 나만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남편과 종일 수다 떠는 게 즐겁다. 내가 나를 알아갈수록 내 주변의 사람들이 평온해짐을 보게 된다. 이런 걸 일거양득이라고 하는 것인가?

<이미경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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