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Minari)’가 올해 최고의 영화 반열에 올랐다. 이 영화가 찬사를 받은 이유는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작품성이 관객들에게 ‘우리들의 이야기’로 전달되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미나리’는 미국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이지만, 한인들만이 아니라 미국인 모두에게 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민의 나라, 모두가 이민자인 미국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가족 간의 사랑을 그린 따뜻한 인간적인 영화이다.
처음 가족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았을 때, 아이들은 별로(?)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할리웃 식의 스펙터클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영화이기 때문이었다. 미나리는 평범함이 물 흐르듯이 흐르는 영화이다. 커다란 사건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영화이기에 ‘기생충’처럼 충격적이고 엄청난 스토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그곳에서 미나리 향기를 내뿜는 자랑스런 우리 코리안들의 이야기이다.
미나리가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아시안 혐오’라는 미국의 현실과 맞닿아있다는 사실이다. 아시안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들불처럼 피어오르는 현실에서 미나리가 주는 메시지가 있다면 이민자인 우리는 주변인(Marginality)이라는 것이고, 이 주변인이라는 정체성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정용 박사는 그의 책 “마지널리티”에서 주변인의 정체성을 두 가지 이야기로 풀었다. 하나는 민들레 이야기다. 영화 속의 미나리처럼, 우리는 넓고 아름다운 잔디밭 속 민들레 같은 주변인이라는 것이다. 주류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주류와 중심이라는 폭력적 의식에 길든 오늘의 미국에서 해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작은 연못 이야기다. 연못의 중심에서 시작된 물결은 가장자리(주변)에 도달하자 다시 중심을 향해 되돌아가는 것처럼, 모든 것을 중심(주류)으로부터 보고 생각해야한다는 의식을 버리고 주변과 중심의 관계, 즉 주변이 없다면 중심도 없는 것처럼 주변과 중심은 서로 관련되고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다문화시대이다. 다문화시대의 갈등은 주류와 주변인 의식의 충돌에서 시작된다. 인종, 문화, 성, 경제상황, 정치적 견해, 신앙 등이 그런 요인들이다. 그렇지만 이런 이중문화와 주변인 의식을 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 주변과 중심은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닌, 하나라는 생각으로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두 세계 사이’에 살도록 하나님이 디아스포라로 여기 미국에 흩어놓으신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오는 길에 중가주 디누바(Dinuba)와 리들리(Reedley) 시에 들렀다. 이곳은 우리 미주 한인들의 최초 본토 이주지였다. 독립문과 애국지사 기념탑, 리들리 한인교회, 한인묘지, 박물관, 안창호 선생과 이승만 대통령이 묵었던 호텔 등을 돌아보면서 한인 이민 선조들의 소중한 흔적들을 살펴보았다.
이곳에서 모여 살면서 교회를 세우고, 열심히 일하여 조국에 독립자금을 대고, 일본에 저항하기 위한 비행학교를 세우기도 하였다. 가슴 뭉클한 감동이 전해왔다. 그 옛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조국까지 품었던 우리들의 이민 1세대들의 흔적들이 너무나 숭고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 뒤를 이어 이 땅에 이민자로 사는 우리들의 역할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여기에 디아스포라들로 살아가는 우리들, 떠나온 한국만 바라보며 살지 말고, 코끝의 호흡이 멈추면 안개처럼 사라지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지 말고, 킹덤 드림을 꿈꾸면서 이 땅에서 민들레처럼, 미나리처럼 뿌리내리면서 자랑스런 주변인으로서 아름다운 삶의 흔적들을 부지런히 남기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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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