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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빵 굽는 이야기

2021-06-01 (화) 이미경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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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시작된 후 나는 늘 집에서 버추얼 공간을 통해 일을 해야 했다. 이런 일상이 꼬박 1년이 지날 즈음 느닷없이 빵을 구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 아닌가? 이 생각이 발단이 되어 제빵에 필요한 도구들과 책을 하나둘씩 사 모으며 빵을 만들어 보리라 굳게 마음먹게 되었다.

먼저 재료를 다 섞어 반죽을 치대고 때리고 굴리고를 반복한다. 이런 반죽의 시간은 대략 40분 정도. 이후엔 머리에 송송 맺힌 땀을 한번 닦아내주고 동그란 양푼에 반죽을 넣고 시간과 습도를 맞추어 적당히 덮어놓으면 어느새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이 과정이 반죽에서 빵으로 변모하는 발효의 과정이다. 처음에는 이런 현상이 하도 신기해서 그 재미에 빵을 만들 정도였다. 이스트가 반죽 곳곳을 부풀어 오르게 해서 폭신폭신한 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때 반죽이 덜 되어도 문제지만 반죽에 넣었던 물의 온도, 이스트의 양, 공기와 습도 등 많은 요소들이 빵맛을 좌우한다. 소휘 빵의 풍미라는 것도 이런 과정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부풀어 오른 반죽을 탁탁 쳐서 공기를 빼낸다. 그리고 다시 좋아하는 크기로 잘라 동그랗게 만들어 또 잠시 놓아둔다. 그리고 다시 칼집을 내고 한참동안 발효를 시키면 오븐에 들어갈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이 반죽 덩어리가 오븐에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축제가 일어난다. 반죽이 더 부풀어 오르고 색이 노릇노릇해지면서 조금씩 빵 냄새를 풍겨 주는 것이다. 오븐 앞에 앉아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 명상에 잠긴다. 알람이 울리고 이제 작품이 구워져 나오는 시간. 신기하게도 같은 반죽에서 떨어져 나온 빵들임에도 모양이 제각각이고 색깔도 가지가지다.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이 개성 넘친다.

이렇게 빵을 만드는 날은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다. 주로 빵을 큰 덩어리 모양으로 굽기 때문에 모두 모여 조금씩 떼어 먹게 된다. 자연스럽게 얘기가 오고가고…이렇게 시작된 가족 모임은 밤이 되도록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빵을 굽는 과정은 삶의 과정과정에 충실한 기쁨을 누리다 맞이하게 되는 환희 같다. 또 빵을 만드는 과정과정은 살아가는 과정처럼 변수도 많고 고됨도 있지만 맛난 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의 기쁨은 고급 빵집에서 파는 빵을 한 입 물었을 때보다 크다는 것이다. 그럼 오늘은 어떤 빵을 구워볼까?

<이미경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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