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럴 수가…’-. 한 주가 지났나. 문재인과 바이든.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을 발표한 지가.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남중국해 등에서의 항행과 비행의 자유’ ‘쿼드 등의 중요성 인식’이라는 표현이 성명에 들어가 있다. 모두 중국을 겨냥한 워딩이다. 중국이 가장 민감히 받아들이는 대만문제를 거론했다. 거기다가 ‘북한인권’문제도 지목했다.
종북굴중혐미반일(從北屈中嫌美反日)의 대명사라고 할까. 그 문재인 정권이 이런 메시지의 공동성명에 서명을 하다니. 586 주사파 출신의 문 정권 사람들로서는 심장마비를 일으킬 만한 일대사변이 발생한 것이다.
그 충격파가 한 주가 지난 현재에도 가시지 않고 있다. ‘도대체 왜…’란 질문과 함께.
정상회담 뒤안길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렇다. 예상한 대로다. 워싱턴 입장에서 볼 때.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 등 문구를 공동성명에 넣는 데에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그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김정은에게만 꽂혀 있다. 국제질서니, 민주주의 가치관이니 하는 것은 안중에 없다. 중요한 것은 오직 김정은이다.
바로 그 점에 포착, 노련한 바이든은 한 수를 던졌다. 일종의 장계취계(將計就計)라고 할까.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삽입에 동의를 해준 것. 보너스도 얹혀주었다. 파트타임이지만 성 김 인도네시아 대사를 대북특별대표로 임명한 것이다. 그러자 한국 측은 즉각 반대를 철회했고 공동선언문은 워싱턴의 원안대로 미-중 관계 중심으로 작성됐다는 거다.
그럴 듯하게 들린다. ‘아무리 그렇지만 그래도 명색이 정상회담인데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바로 뒤따라 던져지는 질문이다.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회담에 임한 워싱턴의 태도가 전과는 사뭇 다르다. 일견 유연해 보인다. 그렇지만 중국문제, 인권 등 일부대목에 대해서는 아주 강경하다. 그런데다가 치밀하고 원모(遠謀)가 담겨있다. 미국의 강한 협상력과 자장에 끌려들었고, 그 결과 회담은 미국 쪽으로 추가 크게 기울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제정세가 심상치 않다, 특히 아시아의 안보 상황은 급변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정황에서 동시에 전개되어 온 것이 바이든 행정부의 정상외교 드라이브다.
취임 100일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기간 중 쿼드 정상회담이 열렸다. 바로 뒤이은 것이 미일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이다. 6월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 등 G7에다가 한국, 호주, 인도 등이 합쳐진 민주국가 정상회담 D10이 예정돼 있다.
왜 숨이 가쁠 정도로 바이든 행정부는 정상회담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는 것일까. ‘대만의 풍운이 급박하다’- 답은 상당부분 여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대만과의 통일’은 국공내전 이래 중국공산당의 변치 않는 전략목표다. 시진핑의 일생일대 야망도 ‘대만 수복’이다.
경제 발전과 함께 중국이 꿈꾸어 온 것은 해양대국으로의 비상이다. 이와 동시에 대만의 지정학적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중국이 태평양으로 세력을 확장시키려면 제 1도련선을 돌파해야 한다. 그 길목을 지키고 있는 것이 불침항모로 불리는 대만이다.
그 대만 합병을 위해 베이징은 남중국해에서 전초전 비슷한 군사도발을 해왔다. 공해상의 바위덩어리 등에 시멘트를 부어 군사기지화 한다. 멋대로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일본, 대만 등의 항공금지구역을 마구 침범한다. ‘그 때’를 대비해 상대의 의지를 시험해 보는 거다.
미-중 대립이 기술경쟁으로도 확산되면서 대만의 지경학적(geoeconomic)위상도 높아가고 있다. 정보기술(IT)과 4차 산업혁명으로 정의되는 미래를 압도하기 위해선 그 핵심 ‘두뇌’인 반도체 분야를 장악해야 한다. 중국이 필요로 하는 첨단 반도체 위탁생산을 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대만 둘뿐이다.
바로 이 때문에 중국의 대만침공 가능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다가 ‘미국은 쇠망해가고 있다’는 베이징의 확신이 강해지면서 그 야욕은 더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 워싱턴의 진단이다.
그 중국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대만 방위는 21세기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세력 간의 세기적 투쟁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이다. 올인 자세로 임하겠다는 거다.
이런 배경과 관련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적지 않은 관측통들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폐기키로 한 것이다.
‘한국이 미사일 주권을 확보했다’- 이는 다름이 아니다. 중국, 러시아를 사정거리에 둔 미사일을 미국의 맹방인 한국은 마음대로 제조할 수 있고 또 수출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미사일 강국 한국을 통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의도가 담겼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의 미국맹방으로 복귀한 차기 한국 정부가 그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면서.
일별하면 미국이 한국을 군사동맹에 이어 4차 산업동맹으로 끌어 올린 것이 이번 한미정상회담으로 보인다. 6.25 전쟁 때 중공군에 맞서 싸운 노병에 양국 정상이 함께 한 자리에서 실시한 명예 훈장을 수여한 상징적 이벤트, 그리고 5G 이동통신 및 6G, 그리고 바이오 기술 등의 파트너십 발전을 공동성명에 명기한데서 볼 수 있듯이.
문제는 여전히 문재인 정권이 아닐까. 워싱턴에서는 반중을 외쳤다. 그리고 귀국해서는 벌써 딴소리를 하고 있으니 그게 혹시 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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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