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뉴저지 뉴왁 교구 신부이다. 천주교 모든 신부들은 소속이 있다. 신부가 될 때부터 자신이 속한 교구 주교로부터 서품을 받고 그 주교에 순종하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그 주교로부터 허락 없이는 다른 곳에 가서 사목을 할 수가 없다. 사제들은 평생을 자신의 교구에서 이 성당 저 성당 옮겨 다니며 살아가다가 은퇴를 한다. 우리들은 임기는 보통 12년 그러니 신부 평생 성당 3~4군데 돌다보면 은퇴할 나이 70이 된다. 나도 뉴저지 팰팍의 마이클 성당이 세 번째 성당이다.
대부분의 교구사제들의 꿈은 본당신부가 되는 것이다. 본당의 신자들과 울고 웃으며 동고동락을 하는 삶이 우리 교구신부의 삶의 정수일 것이다. 천주교의 특성상 주교를 대신해 성당에 파견된 본당신부에게 모든 권한이 다 주어진다.
영적인(spiritual)면 뿐만 아니라 물질적인(temporal)면 그리고 성당을 운영하는(govern) 모든 것을 관활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본당신부직은 모든 교구사제가 한번은 꿈을 꾸는 자리가 아닌가 싶다.
본당에 모든 일을 책임지는 나름대로 제일 높은 본당신부 자리에 올라서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오고 멀어지는 것이 보인다. 교회생활 수십 년을 하면서 수많은 사제들을 겪어서인지 신부를 순수하게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내 자신도 순수한 신부보다 조심하고 경계하고 주판알 굴리는 정치적인 신부로 되어 간다.
그러면서 불현듯 느낀 게 본당신부 생활이란 게 세상 속에 던져져서 마치 진흙탕 속에서 뒹굴어 흙탕물에 범벅이 되는 삶이 아닌가. 교회 안에 벌어지는 수많은 인간의 약점들 죄의 열매를 맛보고 겪으면 나는 성인이 됐다가 악인이 되고 의인도 됐다가 가장 비열한 죄인도 되어 본다. 내안에 별의 별 생각들이 뭉게구름처럼 피었다가 사라지고 뭉쳤다가 흩어진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 나에게 불만인 사람들, 나에 대해 가십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내 마음속에 미움이 일어난다. 그러니 본당생활에서 감사한 것, 은혜로운 것, 기쁜 일보다는 자꾸만 부족한 것, 분노, 가슴 아픈 일에만 마음이 끌리게 된다.
그러니 나의 사제 생활과 사목도 어느새 힘이 부쳐 마지못해 하는 무거운 짐, 기쁨보다는 두통거리가 되어 버린다. 그런 김빠진 맥주 같은 내 마음이 알게 모르게 신자들에게 전달되고 어느새 성당 분위기도 감사와 기쁨이 없는 맥 빠진 교회가 되어 버린다.
사제의 태도와 마음자세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가만히 생각만 해 보면 금새 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도 깨끗한 마음, 밝은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 가며 살아나갈까? 그게 바로 우리 교구신부들의 화두이다.
세상에 살아가면서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여전히 맑고 깨끗하게 하느님의 밝은 빛을 담아 내는 것 말이다. 그래서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도 여전히 어린애처럼 맑고 깨끗하고, 알 것 다 아는 것 같은데도 여전히 천진난만하듯 순수해질 수 있는 것이 마치 니코데모가 어떻게 다 큰 어른이 다시 태어날 수 있냐고 볼멘 소리로 예수님께 묻는 것과 같다.
“어떻게 다 큰 사람이 엄마 뱃속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 (요한복음3:4).
<
조민현/뉴저지 팰팍 성마이클 성당 본당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