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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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네가 왜 여기서 나와?

2021-05-27 (목) 김영란 (북산책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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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이 즐거우나 먹거리 변변찮던 유년 시절, 추위를 녹이고 마음을 데워주던 미제 물건이 있다. 단속원이 나타나면 순식간에 사라져 ‘도깨비 시장’이라 불리던 미제 시장의 색색의 새알 초콜릿이나 짭짤 달콤한 리츠 크랙커는 뭔가 확실히 달랐다. 그중에 김 모락모락 나는 흰 밥에 살살 녹아내리던 노오란 ‘빠다’는, 계란 깨 넣고 간장 한 술 보태면 부드럽고 고소한 이국의 향을 풍기며 내 모든 감각을 동원시킨 미국의 이미지였다.

새삼 옛날 소울푸드(soul food)로 추억을 부르는 것은, 23일 ‘2021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K-POP 사상 최다 4개의 상을 받은 방탄소년단(BTS)이 처음 라이브로 선보인 신곡 ‘버터(Butter)’ 때문이다. 세계 젊은이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가사와 바른 행동으로 팬들을 파고든 일곱 꽃미남의 멋진 가창력과 랩, 인간이길 포기한 군무 퍼포먼스는 관심가면 더 수상한 세대의 나까지도 봉사와 기부로 답한다는 팬클럽 아미(Army)가 되고 싶게 했다. ‘Butter’ 영상은 24시간 만에 조회 수 1억 820만을 돌파하며 유튜브 사상 최다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우리는 기분 전환과 위로를 받으려 음악을 듣는다. 맛이나 음악이나 다르지 않아 그 모두 삶의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내 평생 다이어트의 실패 원인이 버터에서 시작해 버터로 끝난다는 빵이나 케이크를 포기하지 못해서긴 하지만, 심장을 버터처럼 녹이겠다는 밝고 신나는 이 ‘서머 송(Summer Song)’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클릭하며 올 여름 더위를 이길 지 기대가 된다. 다만 도입부의 흑백처럼 흑백시대 한국에서 먹던 내 빠다가 어떻게 한국인에 의해 미국으로 돌아와 거대한 문화로 자리 잡는지 그 여정이 기적 같다.

광복 후 백범 김구 선생은 부(富)력은 생활이 족할 만하고 강(强)력은 침략을 막을 만하면 되지만 오직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며, 문화는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뭔 소린가 했을 텐데 이제 통한다. 원래 영어 BTS의 뜻은 ‘Behind The Scene’(막후에서)로 한 분야의 최고봉을 일컫는다. 이미 여러 분야에 정상에 선 BTS 보유국 한국이, 선생의 원처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로 인류에게 행복을 주는 문화강국으로 더욱 발전하길 소원한다.

<김영란 (북산책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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