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부활의 선인장
2021-05-24 (월)
김소형 (SF한문협 회원)
캘리포니아의 봄, 산호세의 동쪽 하이웨이를 지나 낮은 산등성이를 오르자 잘 단장된 집들이 보이고 어느새 만남의 공간에 도착했다.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온라인 줌으로만 함께했던 분들과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리였다. 그곳은 축제와 같은 기쁨과 기대 그리고 떠남과 만남이 공존하는 자리였다. 그날의 아침, 정원 옆 한 자락에 부활절 선인장이 처음으로 꽃을 피웠다. 밤까지 봉오리였던 꽃이 피었음을 알리는 반가운 소식에 함께 인사를 마친 이들은 다음으로 꽃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얼마나 기다린 터트림이었는지 모두가 반가워 그의 곁에 다가가 말을 걸어주고 예쁘다 칭찬하고, 기특하다 다독여주고, 때마침 만남의 시간에 피어준 것에 감사했다. 선인장은 꽃 한송이 피움으로 그날 축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어제도 꽃을 피울 수 있었고, 내일 피웠을 수도 있으며 또는 아예 꽃을 피울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부활의 선인장은 바로 그날 그 시간에 가장 찬란히 자신을 꽃 피웠다. 그는 자신이 꽃 피울 시기를 준비하고 있었음이다. 그렇게 꽃이 피는 것 하나에도 때가 있고 기다림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의 일에 때가 있고 기다림이 있지 않을 수 있을까?
선인장 잎끝의 모양으로 게발 선인장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선인장은 축제일 선인장(Holiday Cactus)이라고도 불린다. 크게 봄 부활절 즈음에 개화하는 부활절 선인장(Easter Cactus)과 가을에 피는 추수감사절 선인장(Thanksgiving Cactus), 그리고 겨울에 피는 크리스마스 선인장(Christmas Cactus)이 있다. 그런데 그 선인장이 꽃을 피울 시기인데도 꽃이 피지 않는다면 그것은 영양 부족이 아니라 빛 공해라고도 하는 너무나 오랜 불빛 때문이라고 한다. 선인장이 제때에 꽃을 피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이외로 밤의 시간인 어둠이었다.
그날의 부활절 선인장은 누구를 위해 피운 꽃일까를 생각하다 멀리 있기에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사랑이란 이름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리움의 사람들, 우리가 살아가며 각자에게 놓인 삶의 문제들이 긴 어둠과 고통의 터널로 느껴지는 날에도 부활의 봄을 위해 어둠을 인내하고 기다리며 피었을 부활절 선인장처럼 살아가라고, 부활의 생명을 믿고 기쁘게 살아가라고, 그것이 하필 그날 그 꽃이 그곳에 피었던 이유라고 전해주는 것 같았다.
<김소형 (SF한문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