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자녀가 행복해지는 대학 선택

2021-05-21 (금) 이해광 논설위원
크게 작게
지난 2010년 뉴욕 맨해튼 52번가에 문을 연 한식당 ‘단지’(Danji)는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한식당 최초로 별을 받았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만큼 이 식당이 눈길을 끈 것은 셰프 겸 오너인 김훈이씨의 이력이다.

그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의대에 진학, 의사의 가운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 셰프로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 “막연히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의대에 갔지만 의학 공부와 병원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졸업을 앞두고는 너무 심한 두통으로 힘들었지요. 이 시기에 평소 식도락에 관심이 많아 취미 삼아 요리학교에서 쿠킹을 배웠는데 두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거예요, 요리를 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즐거움의 연속이라 너무 놀랐어요.”

그가 전도유망한 직업중 하나로 꼽히는 의사의 길을 포기한 이유다. 물론 그의 어머니는 거의 1년간 말을 안 했을 정도로 심한 반대를 했지만 결국 자신이 행복해지는 셰프의 길을 선택했다.


김씨처럼 적성에 맞지 않는 대학에 진학한 후 중도에 포기한 경우는 꽤나 많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보다는 단지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선택한 경우다.

올 가을 12학년이 되는 수험생들은 이제 인생의 첫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 선택’을 앞둔 본격적인 레이스에 들어섰다. 이제 자신에게 적합한 혹은 도전할 만한 칼리지 리스트를 작성해야 한다. 대학 선택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차대한 결정 중 하나, 그만큼 수험생들은 물론 학부모들도 노심초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학부모들은 알게 모르게 마치 자신이 진학할 대학을 선택하는 심정으로 자녀의 대학 결정에 대해 관여하게 될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그리 쉽고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너무 지나쳐도, 그저 알아서 하도록 방관해도 안 되기 때문에 ‘적정한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가장 먼저 ‘자녀를 충분히 이해하고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강조한다. 일방 통행식으로 자녀의 의견을 묻지 않고 강하게 몰아붙이면 안 된다. 대학 선택에 있어 부모들이 고려하는 우선순위와 자녀들의 우선순위는 다를 수 있다. 부모가 원하는 대학들을 선택하라며 압력을 가한다면 자녀들은 견디기 힘들고 결국엔 반발과 잦은 충돌만이 있을 것이다.

의견차이가 있을 때는 자녀와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그들의 감정과 의견을 이끌어 내는 게 중요하다. 자녀의 선택이 걱정 된다면 “그 대학이 아니라 왜 이 대학이 끌리는지 말해볼래…” 등으로 마음을 열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녀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금물. 내로라하는 명문대에 들어가기를 바라겠지만 현실은 다른 경우가 더 많다. ‘너만 믿는다’ ‘너는 할 수 있어’ 같은 말 역시 격려, 용기보다는 좌절감을 안기고 압박감으로 받아들여질 확률이 훨씬 높다.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나 엄친딸(엄마 친구 딸)도 금기어다. ‘옆집 누구는 잘만 하는데 너는 왜 이 모양이냐’ 같은 표현은 열등감을 자극하고 자녀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다른 아이와 잦은 비교를 당하는 아이들은 ‘나는 못난이’라는 부정적 자아상을 갖게 만들고 자존감까지 잃게 만들며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미국에서 각 방면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 100여명에 대한 발자취를 연구한 결과가 있다. 이들의 성공 요인이라면 우리는 두뇌나 노력, 인내, 환경 등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 뒤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준 부모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자녀의 대학 입시에 있어 부모는 어디까지나 ‘좋은 도우미’의 역할에 충실하라고 강조한다. 지나친 간섭보다는 대학 선택과 전공결정 등에 관해 대략적인 윤곽을 그려주면서 올바른 방향을 갈 수 있도록 가이드 해주라는 것이다. 물론 대원칙은 ‘부모에게 맞는 대학’이 아니라 ‘자녀가 행복해지게 만들어주는 대학’이어야 한다.

“경쟁이 심한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정말 자기가 사랑하고 즐기는 일을 해야 해요. 전 그저 그런 의사가 되기보다 누구보다 뛰어난 요리사가 되고 싶었고 하루의 대부분을 요리에 몰두하는 지금이 즐겁습니다.” 단지의 김훈이 셰프의 말은 충분히 귀 기울일 만하다.

<이해광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