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Right Matters’-. 이미 100일이 지났나.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선언과 함께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지. 이와 동시에 ‘시대의 화두’로 굳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독일은 미-중 냉전의 발화점이 되어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의 진단이다. 유럽블록은 미국과 중국의 대립구도에서 지정학적 스윙 보트를 쥐고 있다. 그 유럽블록의 리더는 독일이다. 그런데 그 독일의 메르켈 정부는 전략적 연대보다 전략적 등거리 노선을 택했다.
워싱턴의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이 필요로 하는 자유세계 대연합에 커다란 불확실성을 안겨 준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2월 무렵 내려진 진단이다.
세 달도 지나지 않아 상황은 일변했다. 안보는 안보, 경제는 경제라던 입장의 독일이 중국에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미국 중심의 대 중국연합전선에 적극 참여한 것이다.
신장위구르족 인종청소, 홍콩민주주의 교살, 미얀마 군부의 민간인 학살사태. 그리고 인도에서,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대만해협에서의 무력과시. 안하무인격의 전랑외교.
목불인견 사태의 연속이라고 할까. 그 뻔뻔하고 비인도적인 중국 공산당의 패권주의 행태에 진저리가 났다. 경제도 경제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인권이다’- 새삼스러운 자각과 함께 메르켈 정부는 민주주의 가치를 적극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권이다’- 독일과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워싱턴의 대 중국연합전선에서 독일 못지않게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나라. 한국의 문재인 정부에서도 같은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한미정상회담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새삼 던져지는 질문이다.
정말이지 동맹국인 미국을 불편하게 하는 정책의 연속이었다. 문재인 정권의 지난 4년간의 외교안보 정책을 되돌아보면.
북 핵 대응에 필요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는 환경영향평가를 구실로 4년이나 정식배치를 미루고 있다. 죽창가를 불러댄다. 그러면서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에는 참여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 이야기만 나오면 딴전을 펴 온 데서 보듯이.
미국과 대한민국의 안보적 이해가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딴은 자주정신(?)의 발로라고 치자. 문제는 문 정권은 인권이란 민주체제, 더 나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도 줄곧 입을 다물어 온 사실이다.
북한 인권문제에는 침묵, 또 침묵이다. 직접적 당사국임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제안에 3년째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보다 못해 세계인권단체들이 공동서안을 보내도 꿈쩍도 않는다. 홍콩사태에, 신장위구르에서의 인종청소만행에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한 목소리를 내 중국을 비판하고 있다. 그래도 입을 다문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북한군에게 사살되고 그 시신이 소각되어도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북한 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이른바 김여정 하명법 위반자에는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엄정한 법집행을 다짐하고 있다. 그것도 바이든과의 정상회담을 바로 앞둔 타이밍에.
인권문제에도 전략적 계산이 있는 법이다. 그런 측면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항변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니까 문 대통령이 오매불망 추구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라는 거다. 과연 그럴까.
굴종에 가까운 숭북모화 외교정책에도 불구, 남북관계는 개선되지 않았다. 핵 위협은 더 커졌고 베이징으로부터도 받은 것은 냉대뿐이다. 급기야 ‘문재인 호의 대한민국은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관을 공유한 나라가 아니다’란 인식만 전 세계에 확산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왜 문 정권은 미국과의 동맹을 저주하는 듯 한 행보에, 북한인권참상에는 침묵으로만 일관하고 있을까. 주사파 586운동권 출신 여당의원이 북한 외교관 탈북자인 태영호 의원을 ‘변절자’로 부른 데서 그 단서는 찾아지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은 그들에게 조국이 아니다. 태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나라다. 그들이 말하는 조국은 그들의 상상계 속에 허구로 존재하는 상상의 민족국가다.
그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는 체제가 전혀 다른 남한과 북한도 외세에 저항하는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표상된다. 그런 면에서 조선은 하나이고 현실의 북한을 상상계의 북한과 착각, 북한에 대해 비현실적 기대감을 품고 있다. 그들의 시각에서 볼 때 저항해야할 외세는 일제이고, 미 제국주의다. 그리고 마오쩌둥으로 상징되는 중국은 제국주의에 저항해 싸우는 동지인 것이다.
그 586운동권의 조국관이 깊숙이 배어 있는 것이 바로 ‘문재인 표 외교노선’인 것이다.
내려지는 결론은 이런 게 아닐까. ‘인권이 중요하다’는 내러티브는 ‘대한민국 국민은 몰라도 최소한 문재인 정권사람들로부터는 공감대를 이끌어 낼 내러티브는 아니다’라고.
그래서인가. 문재인과 바이든, 그 만남과 관련해 나오는 전망은 꽤나 냉소적이다. 정상회담은 동상이몽의 쇼로 끝날 것이라는 관측이 그것이다. 북핵 문제, 중국 대처, 쿼드가입 등 현안문제는 사실상 다뤄지지 않고 단지 한미동맹건재 과시 무대로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애당초 워싱턴과는 방향성이 다르다. 그런데다가 레임덕 수렁에 빠졌다. 그 문재인을 만나 바이든은 겉으로 동맹인 한국을 존중하는 모습을 취하되(백신공급이 그 일환일 수도 있다) 다음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전략적으로 인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런 이야기로 들린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국 국민을 바라보며 이루어진 것으로, 워싱턴은 문 정권이 하루 속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만 고대하고 있다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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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