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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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베토벤의 ‘월광’

2021-05-14 (금) 박현지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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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은 무엇일까? 2018년 KBS FM 클래식 채널의 설문조사에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1위를 차지하였다. 이 곡에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1802년 베토벤이 32살이었을 때 공개된 이 곡이 자신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줄리에타 귀차르디’라는 한 여인에게 헌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겪고 있었다. 그의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통해 불우한 어린 시절의 아픔들을 애써 극복하고 어떻게든 귀족들과 어울리려 했지만, 재산과 신분의 차이는 결코 좁힐 수 없었다. 결국 여러 명의 귀족 여성에게 이용만 당하고 퇴짜를 맞았던 청년 베토벤은 마음에 큰 상처들을 품게 된다. 거기에 더해 귀가 점점 들리지 않게 되면서, 음악인으로서 표현할 수 없는 불안과 절망을 맛보게 된다.

이때 만난 여인이 귀차르디였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둘은 깊은 연인관계로 발전하였고, 그녀는 베토벤의 깊은 상처와 불안을 말끔히 씻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귀족이었다. 베토벤의 청혼은 또 다시 거절되었고, 그는 이전보다 더 큰 상처를 받는다.


이 당시 만들어진 ‘월광 소나타’가 어떤 이유로 그녀에게 헌정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순 없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이 헌정 자체가 청혼이었다고 말하고, 또 다른 이들은 곡이 발표되었을 때 이미 둘의 관계는 끝이 난 상황이었을 것이라 주장한다. 분명한 것은 그녀가 베토벤의 헌정을 뒤로 하고 이듬해 오스트리아의 귀족과 결혼하며 베토벤 곁을 영영 떠났다는 사실이다.

재미있는 것은 3악장으로 이뤄진 ‘월광 소나타’의 1악장과 2악장은 은은한 달빛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지만, 3악장은 ‘루나틱(lunatic)’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광기가 뒤섞여 있다. 지난주에 소개했던 드뷔시의 ‘달빛’과 오늘 소개하는 베토벤의 ‘월광’은 ‘moonlight’라는 똑같은 단어에서 왔지만, 참 적절한 우리말 번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드뷔시의 ‘달빛’이 에펠탑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후기 낭만의 정서를 잘 담아낸 따뜻한 곡이라면, 베토벤의 ‘월광’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으며 경험했던 고난과 광기의 정서를 천재적인 예술혼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pianistar #월광소나타

<박현지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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