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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남긴 달갑지 않은 유산

2021-05-14 (금) 조환동 부국장·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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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미국에서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넘쳐날 만큼 풍부한 백신 공급에 힘입어 백신 접종이 급속히 늘면서 확진자수는 비례해서 줄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미 전국적으로 확진자수가 무섭게 증가하고 있을 때 검사 건수는 턱없이 부족해서 많은 우려를 샀지만 백신 개발·생산국이라는 이점을 살려 수억명 분의 백신을 가뿐이 확보하는 것을 보고 “역시 미국이 세계 1위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 검사를 실시하는 등 ‘K방역’ 능력을 외쳤던 한국은 정작 가장 중요한 백신 확보에서는 웬만한 아프리카 국가보다 뒤처져 있어 걱정이 된다.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연방정부의 다양한 경기부양책과 현금 지원에 힘입어 억눌렸던 ‘보복 소비’가 현실화되고 있고 기업들은 영업·생산 활동을 재개하면서 인력 채용에 나서고 있지만 필요한 인력을 찾지 못하는 ‘구인난’이 심각하다.

연방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3월 채용공고는 812만건으로 전월보다 8%(59만7,000건) 급증했다. 지난 2000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은 기록이다. 반면 3월 채용은 전월보다 3.7% 증가한 600만명으로 채용공고 건수보다 200만명 이상 적었다. 그 격차 또한 역대 최다 기록이다.

구인난은 오는 9월 연방정부의 실업 수당 혜택이 종료되면 자연스럽게 밸런스를 찾아가겠지만 더 큰 문제는 인플레이션이다.

바이든 행정부와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는 인플레가 일시적이고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고 하지만 서민들이 느끼는 장바구니 체감 물가는 다르다. 마켓을 가거나 외식을 할 때마다 부쩍 오른 가격에 놀라게 된다. 개솔린, 자동차, 전자제품, 항공료, 각종 서비스 요금 등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그러나 시장 경제에서 어느 정도의 인플레는 필요하고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적정한 수준’의 인플레와 디플레 중 하나를 고르라면 인플레를 선택한다. 적정한 수준의 인플레는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디플레는 물가가 오르지 않고 경기가 위축되고 침체되는 상황에서 주로 발생한다.

미국과 한국 모두 ‘적정한’ 수준의 인플레를 2%로 본다. 미국이 인플레를 걱정하고 있다면 한국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저성장·저물가가 상징하는 디플레 경제 기조에 빠져있다. 한국은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4에 그쳤고 올해는 0%대 중반에 그치며 한국은행의 목표치 2%에 한참 못 미칠 전망이다. 한국 경제는 세계 최저 저출산·고령화로 성장 동력을 빠르게 상실해가고 있다.

물론 미국의 인플레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높은 인플레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화폐 가치를 추락시켜 재산가치와 소비여력을 잠식하고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디플레 못지않은 소비 감소와 경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4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대비 4.2%로 13년래 최고치를 기록하며 코로나발 인플레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소비는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핵심 요소이어서 경제학자들은 인플레로 인한 장기적인 소비 위축을 가장 걱정한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아직은 경기부양금과 실업 수당 등으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도 이 돈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게 되지만 높은 인플레로 한 번 오른 가격은 내려가지 않는다.

요새 뛰는 외식비로 부담을 느끼는 것은 한인뿐만이 아닌 것 같다. 두 명이 식당에 가서 세금과 팁을 내면 아무리 싸게 먹어도 30~40달러가 나오기 때문에 맥도널드, 버거킹, 서브웨이, KFC 등 패스트푸드 체인들은 몰려드는 고객으로 유래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들 체인들은 역대 최대 규모의 채용에 나서며 직원 찾기에 혈안이 되고 있으며 일부 체인은 인터뷰만 해도 현금 보너스까지 제공한다. 한 예로 멕시칸 음식체인 치폴레는 올해에만 무려 2만명의 신규직원을 채용할 계획이다.

이같은 상황에 미 심장협회 등 의료단체들은 미국민들이 패스트푸드를 너무 많이 섭취해 건강상태가 악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경제를 비롯, 세상의 모든 것에는 명과 암이 있다. 인플레는 코로나 팬데믹이 남긴 가장 달갑지 않은 유산으로 남을 것 같다.

<조환동 부국장·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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