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대한 세계인 호감도 최저수준’-. 트럼프 대통령시절 국제 여론조사가 실시됐다 하면 판박이 같이 나온 결과다.
그 미국의 인기도가 호전되고 있다. 특히 극적인 변화가 일고 있는 나라는 독일이다. 지난 1월 20일 24%에 불과했던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두 달이 지난 현재 46%로 뛰어올랐다.
데이터 정보회사인 모닝 컨설트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로 바이든 대통령 취임이후 독일, 프랑스 등 세계의 주요국가에서 미국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호전되고 있다는 보도다.
이런 여론의 흐름을 탄 것인가. 불과 수개월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변화가 유럽에서 잇달고 있다.
2014년부터 협상을 시작해 지난해 말에 타결됐으니까 무려 7년이 걸렸나. 유럽연합(EU)과 중국의 ‘포괄적투자협정’(CAI) 말이다.
이 투자협정은 어찌 보면 메르켈 독일총리의 등거리 외교의 산물로 볼 수 있다. 그런데다가 이 투자협정이 타결된 타이밍은 민주주의체제연대와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바로 앞둔 2020년 12월 30일의 시점이다. 미국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중국으로서는 아주 귀중한 외교적 승점을 올렸다고 볼 수 있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을 포함한 14개국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체결한 데 이어 EU와도 손을 잡았으니.
그 투자협정(CAI)이 그런데 그만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EU의회에서 비준 논의가 중단된 것이다. 이후 유럽에서 쏟아지고 있는 중국을 향한 내러티브들은 하나같이 아주 신랄하기 짝이 없다.
이탈리아는 서방 G7 국가 중 유일하게 시진핑의 일대일로에 참여한 나라다. 그 이탈리아 정부가 180도로 선회했다. 네덜란드는 중국의 10대 교역국가 중의 하나다. 네덜란드도 중국의 하이텍 기업 인수를 막는 등 중국견제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이 와중에서 유럽위원회(EC)는 중국을 타깃으로 EU기업 보호조치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불과 4개월여 만에 유럽의 정서가 급변했다고 할까. 이와 함께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중국과의 대립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에 적극 동조하고 있는 그런 형국인 것이다.
무엇이 가져온 변화인가. ‘…결국 중요한 것은 인권이다’- 답은 여기서 찾아지는 것 같다.
워싱턴의 대 중국 강경입장에 회의적이다. 힘을 통한 평화보다는 오스토폴리티크(경제, 문화적 포용정책을 통한 통일정책)의 경험칙을 더 신뢰한다. 수출주도형 경제의 독일기업들은 중국시장에 중독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에서 항상 독자노선을 추구해왔다. 그 노선에 그런데 변화가 일고 있다. 지난달 말 리커창 중국총리와 가진 ‘제6차 중국·독일 정부 협상’ 회담에서 메르켈은 홍콩 문제를 거론하면서 인권문제로 압박을 가한 것이다.
정치 이슈와 경제 이슈는 별개라는 예의 ‘베이징의 구동존이(求同存異) 외교수사’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중국과의 경제협력 관계 확대를 환영하던 입장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다.
홍콩사태에다가 신장성 자치구에서 자행되는 인종청소. 날로 악화되고 있는 중국의 인권탄압. 그리고 남중국해, 대만에서의 잇단 도발행위. 미국이, 영국이, 캐나다가 제재에 나섰다.
EU는 주저주저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제재대열에 동참했다. 중국이 역습을 가해왔다. EU 국가들에게 압력을 가해 침묵을 강요해왔다. 그도 모자라 제재에 앞장 선 유럽의회 의원 등에 대한 홍콩과 마카오를 비롯해 중국입국금지 조치를 내린 것이다.
‘아마도 이게 퍼펙트 스톰이 아니었을까’-블룸버그 통신의 지적이다. 오만한데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중국의 태도에 여론이 돌아선 것이다. 이후 중국과 관련된 어젠다마다 EU는 인권과 민주적 가치 첨부조항을 달고 있다.
‘그러나 정작 대지진에 버금가는 대변화는 오는 9월 이후에 발생할 것이다’- 포린 폴리시지의 전망이다. 메르켈은 은퇴와 함께 곧 정계를 떠난다. 그 후계자로 유력시 되는 인물은 녹색당의 아날레나 베르보크 대표다.
베르보크는 중국의 인권탄압사태에 그 누구보다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분쟁을 종식시키고 인명을 구할 수 있다면 군사개입도 때로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중국, 러시아 등 제국 형 권위주의체제에 특히 강경한 입장이다. 그러니….
이 변화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나. 중국과의 대치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의 하나는 독일이다. 1차 냉전 때와 마찬가지로 유럽전선에서 중핵 같은 존재가 바로 독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국 입장에서 볼 때 대중국전선의 한 축인 유럽전선은 견고하게 다져지고 있다고 할까.
그 흐름은 주요 7개국(G7)외교장관 회담 공동성명에서도 읽혀진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됐다. 특히 중국의 패권주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대만의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가입을 지지했다. ‘하나의 중국 약속’을 버릴 수 있다는 강력한 시사를 흘린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국제사회 복귀를 선언하며 리더십을 보이자 G7은 미국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고 할까. 이 기조는 한국도 ‘초대받은 민주주의 정상회담(D10)’에서도 이어지고 민주주의연대 구상은 더 구체화될 것 같다.
D10 회담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찬가만 열창하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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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