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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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여정’의 깃발

2021-05-03 (월) 김소형 (SF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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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이란 사전적 의미는 여행 동안 거쳐가는 길이나 여행의 과정을 의미한다. 삶이란 각자의 여행길이기에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의 여정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경험을 나누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며 살아간다. 때론 그 길이 내 안의 아픔을 보게 하고 상처를 덧나게 하며 열등감을 불러일으킬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내 삶에 적용하고 이겨나가냐에 따라 이후의 삶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지난 주말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제 93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영화배우 ‘윤여정’씨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쾌거다. 그녀 개인의 삶의 여정에도 오늘이 있기까지 수만가지 모습들이 함께 했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연기철학은 열등감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열등감을 넘어 그녀의 당당함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나는 그녀가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자신에게 솔직하며 그렇기에 남을 탓하거나 왜곡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음이 컸으리라 생각한다. 왜곡된 거울은 빛의 방향을 바꾸고 대상을 일그러트리기 때문이다.

최근 아시안을 겨냥한 인종혐오 범죄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왜곡된 시각과 차별은 증오로 번지고 아시안을 위협하고 그들의 생명을 앗아가기까지 한다. 일그러진 거울은 타인에게 쏠려 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비단 그들뿐이랴. 우리는 누군가의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키며 진실과 정의란 이름으로 또는 자신이나 세상의 보편적 기준이란 잣대로 판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나의 부끄러운 허물을 되돌아보는 시간은 줄거나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스스로에게만 관대해지기도 한다.

“부끄러움을 가리킵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이 두 가지 중에서 나는 누군가의 부끄러움을 가리키고만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이에게 듣고자 깨어있는 사람인지 생각해본다. 박완서 작가의 단편 소설 중 하나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주인공은 이야기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 모자라 무슨 무슨 학원을 전전하며 별의별 지식을 다 배웠을텐데 그러나 아무도 부끄러움은 안 가르쳤을 거라고. 그렇기에 각종 학원의 아크릴 간판의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훨훨 휘날리고 싶다고. 1974년에 썼던 그의 단편이 작가의 타계 10주기를 맞은 2021인 오늘에도 우리에게 그리고 온 세상에 ‘부끄러움’에 대해 묻고 질문을 던지고 있음이다.

<김소형 (SF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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