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은 지고, 동방이 부상하고 있다’-. ‘끔찍한 해’(annus horrbilis).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지구촌을 휩쓴 2020년을 바로 뒤로한 올해 초 시점 중국의 시진핑이 한 말로 전해진다.
백악관도 뚫렸다.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자가 된 것이다. 전 미국은 마비됐다. 바이러스에 허둥대는 수퍼 파워 미국. 그 미국을 고소하다는 듯이 돌아보며 ‘공산주의 중화제국 시대의 도래’를 이런 식으로 선언한 것이다.
이 시진핑의 어록을 중국공산당 간부들은 이후 앵무새처럼 읊조려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COVID-19 팬데믹’을 선언한 지 1년이 되가는 지난 3월 초순 무렵 중국공산당은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서방은 지고, 동방이 부상하고 있다’는 이 말을 또 다시 되풀이 했다. 바이러스와의 인민전쟁에서 승리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는 자화자찬과 함께 ‘2020년은 중국에 분수령이 된 해’라고 강조한 것.
코로나 바이러스는 미국에 심대한 타격을 안겨 주었다. 사망자만 56만이 넘는다. 1년이 지난 오늘에도 대부분 공립학교는 문을 열지 못 하고 있다. ‘미국은 과연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패배감만 만연한 가운데 미국의 시대는 끝났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던 것.
“세계는 미국을 사랑했고, 미워했고, 부러워도 했다. 세계는 이제 처음으로 미국을 동정하고 있다.” 이 무렵 한 유럽의 논객이 쓴 글이다. 세계 최악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국가로 전락한 미국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 것이다.
사실상의 홍콩병탄(倂呑)이 자행됐다. 히말라야에서, 남중국해에서, 동중국해에서 전방위적으로 무력을 과시했다. 대만해협은 전쟁 반보직전의 상황에 몰렸다. ‘전랑 외교’를 통해 오만한 눈으로 온 천하를 흘겨보고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중국이 그동안 보여 온 행태다.
‘서방은 지고, 동방이 부상하고 있다’는 확신 하에 시진핑 체제의 중국은 미국도 안중에 없다는 식의 도전적이고 무모한 자세로 일관해 왔던 것이다.
패색이 짙었던 팬데믹 전쟁. 그러나 1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상황은 일변했다. 전황이 미국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면서 이 전쟁의 여파는 중국공산체제의 전 지구적 야망에 재난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미국은 허둥대고만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닥칠지도 모를 세계적 공황을 막는 재정정책을 차분히 펼쳐왔다. 수조달러의 자금을 푼 경기부양 정책이 그것이다. 동시에 추진한 것이 도박에 가까운 백신 개발 프로그램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이다.
증시폭락을 막아냈다. ‘초고속 작전’도박도 성공했다. 드디어 게임 체인저가 등장한 것이다.
하루 평균 300백만 분 백신 접종(4월 현재)과 함께 미국은 영국을 제외한 어느 산업대국보다 빨리 집단항체 형성에 접근해 가고 있다. 중국을 최소한 5~6개월 이상 앞서는 속도로 미국은 머지않아 팬데믹과 불황에서 벗어나 활발한 성장세를 맞게 된다는 것이 지배적 전망이다.
“위기가 닥친다. 고뇌 속에 그 첫 대응은 지지부진하다고 할 정도로 느리다. 그렇지만 전열을 가다듬으면서 점차 무서운 기세로 몰아친다. 그리고 결국 승리로 이끈다.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에서 그랬던 것 같이. 팬데믹 전쟁에서도 이런 미국의 역사적 패턴은 되풀이 되고 있다.” 포린 폴리시지의 지적이다.
이제 전 세계 백신물량을 거의 독점하다 시피 한 미국은 강력한 ‘팬데믹 외교’를 펼칠 기회를 맞았다. 바이러스와의 전쟁 첫해에 미국은 국내 상황 통제에 필사적이었다면 둘 째 해에는 백신접종완료와 함께 전 지구적인 COVID-19 퇴치 전열의 맨 앞장에 서게 된 것이다.
팬데믹 외교는 중국이 먼저 시작했다. 자국민 접종보다도 백신수출에 우선을 둔 정책을 펼쳐 온 것. 그러나 이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중국제조(Made In China)’기술의 낙후성에, 걸핏하면 ‘샤프 파워’를 휘둘러 대는 중국의 민낯이다.
중국제 백신 시노팜을 접종시킨 아랍토후국연방은 세 차례접종을 서두르고 있다. 2차 접종이 완료됐는데도 별무효과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중국제 백신 접종을 유보했고 홍콩 시민들은 기피하고 있다. 중국은 파라과이에서는 백신공급을 미끼로 외교적 양보를 얻어내려고 하고 있다. 대만과의 우호관계를 끊으라는 압력을 넣고 있는 것.
팬데믹을 틈탄 중국의 지정학적 대공세. 처음에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역대급 전략적 대실수’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포린 폴리시의 진단이다. 너무 우쭐대며 세 과시에만 몰두했다. 그 결과는 전 세계적인 반 중국 정서확산이다. 뻔뻔한 중국공산 체제의 속성이 까발려지면서.
프랑스해군도 쿼드 국가들과 함께 인도태평양 해역에서의 기동훈련에 참가할 예정이다. 영국은 아예 반 중국전선의 선봉을 맡다 시피 했다. 독일도 일본 등 쿼드 국가들과의 전략 회담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 시 공동대응방안이 영국, 호주, 프랑스, 일본 등지에서도 공공연히 토의되고 있다.
‘백신 수퍼 파워 미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반 중국전선에 서방이 속속 재집결하고 있다고 할까. 베이징으로서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정황에서 문재인 호의 한국정부는 어떤 좌표설정을 하고 있을까. ‘서방은 지고, 동방이 부상하고 있다’는 베이징 발 내러티브에 혹시 홀로 심취해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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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