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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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반갑고도 시린 바람, ‘오늘’

2021-04-26 (월) 김소형 (SF 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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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이 연둣빛 푸른 돋움으로 일어나는 봄이다. 닫혀진 창문 밖을 바라보노라면 연신 흔들거리는 나뭇잎에서 소리 없는 바람을 듣는다. 보이지 않는 그가 나뭇가지에 머물다 잠시 한눈을 팔다 돌아와 눈길을 주듯. 바람은 잔잔히 멈추었다 일렁임을 반복하며 나뭇잎을 출렁이게 한다.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존재들. 누군가는 우리의 가지를 그렇게 흔들거리게 해주었다는 것을 잊고선 살았던가. 윤동주 시인은 그의 시 ‘나무’에서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라고 했다. 나무가 춤을 추니 바람이 부는 것임을. 우리의 마음이 춤을 추니 바람도 덩달아 불어오는 모양이다.

지난해부터 세상이 하나의 이름을 두려워하고 언제 다시 깨어날지 모를 바람이 잠이 들어있던 동안 우리 마음 안 나무들도 고요한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 바람이 다시 돌아와 출렁인다. 나무들이 노란 영양제를 허리춤에 달고 있던 날과 같이 우리 몸에도 백신이 점차로 투여되고 있다. 문을 열고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주변을 살핀다.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세상 속으로 나오려 한다. 그렇지만 그전과는 사뭇 다른 바람이다. 바람은 휘청거리지 않고 세심해졌다. 나무가 그리고 우리가 그 전의 세상과는 다른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은 여러가지 이름으로 우리 삶을 붙들었다. 가족이나 친구를 홀로 떠나보내면서도 이별조차 제대로 허락되지 않던 시간과 공간들. 잃어버린 가슴들에 구멍이 뚫리고 바람에게 대신 작별인사를 전해달라며 그 몫들을 지운 채 숨죽여 견뎌내야 했던 사람들. 따스한 봄이 왔음에도 그들에게 지금 불어오는 바람은 반가우면서도 얼마나 시리고 아플까.

가게 앞 테이블엔 세니타이저가 놓이고 지나는 이들은 자연스레 눈인사를 건낸다. 변종된 바이러스로 갈 길이 멀게 느껴지고, 백신의 기회가 지구상 모든 이들에게 공평히 주어질 그날까지 막막할지라도 우리가 나아감을 멈추지 않는다면 바람도 일렁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봄의 생명력을 우리 안에 불어넣고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며. 그것이 내 가까이 있었던 발견될 오늘의 축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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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씨는 글을 쓰며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Ernst & Young, 삼정 KPMG 등에서 IT Project PM 및 Senior manager로 일했다.

<김소형 (SF 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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