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 2017년 12월 5일이니까 3년여 전이었나. 노영민 전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중 대사로 중국의 시진핑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며 방명록에 이 같은 글귀를 남겼던 것이.
그 ‘만절필동’이란 구절이 그렇다. 황하는 아무리 굽이가 많아도 반드시 동쪽으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중국 황제를 향한 변함없는 충절을 뜻하는 사대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그리고 며칠 후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베이징대학에서 훗날 두고두고 회자될 명연설(?)을 했다. 두 차례나 ‘혼밥’을 하는 등 홀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높은 산’에 비유하며 “높은 산봉우리가 주변의 산봉우리와 어울리면서 더 높아진다”고 했다. 그 뿐 아니다.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책임 있는 중견 국가로서 중국몽을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패스트 포워드(Fast Forward). 2021년 4월20일. 이번에는 문 대통령이 또 다른 사자성어를 구사하면서 중국에 극진한 사대의 예를 다했다.
구존동이(求存同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같은 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자는 뜻이다. 이 사자성어를 시진핑은 미국을 겨냥해 남의 나라 가치에 간섭하지 말라는 의미로 써왔다.
중국의 선전장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보아오 포럼’에 문 대통령은 미국의 동맹국 지도자로서는 유일하게 영상메시지를 보내면서 시진핑이 미국을 비판할 때마다 내세운 구존동이란 중국식 외교수사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중국을 치켜세운 것이다.
‘중국은 지극한 사대의 예로 모시고 김정은 대변인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문재인 표 해외정책’을 워싱턴은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을까.
‘한 마디로 제 정신이 아니다(crazy)’- 트럼프시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의 말이다. 김정은과의 데탕트를 전제로 한 평화프로세스는 망상에 가깝다는 혹평이다.
‘나의 동맹(미국)의 동맹(일본)은 나의 적이고, 나의 적(북한)의 동맹(중국)은 나의 친구로 보는 것이 바로 문재인 외교다’- 의회전문지 더 힐의 지적이다.
이런 황당한 논리에서 출발한 문 정권의 외교노선은 모순투성이에, 자기 패배적이고 위험을 내포하고 있어 동북아의 안보지형을 뒤틀리게 할 수 있다.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는 김정은 체제와의 문제에 더해 문 정권과의 문제라는 2개의 한국 문제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는 게 더 힐이 내린 결론이다.
숭북모화(崇北慕化). 이 신 사자성어로 요약되는 문 대통령의 국제정세관은 집권 4년이 지난 현재 거의 중증의 강박증세로 전이되고 있는 느낌이다. 평소에도 한 번 무엇엔가 꽂히면 다른 것은 돌아보지 못한다고 할까. 그 문 대통령의 인식에 현실과 동떨어졌거나 뭔가 뒤틀린 측면이 자주 노출되어서다.
다름에서가 아니다. 구존동이란 중국식 외교수사를 여과 없이 구사하면서 시진핑 찬양에 열을 올렸다. 또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는 여전히 대북 미몽에 사로잡힌, 현실과 동떨어진 의식구조를 내보이면서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듣기 싫은 소리만 골라서 하고 있어서다.
‘싱가포르 합의를 폐기하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란 경고성 발언도 모자라 ‘중국과 협력하라’고 충고를 했다. 미국의 대중압박정책은 당파를 초월한 국가적 결단이다. 그런데 명색이 미국의 맹방인 한국의 대통령이 남 이야기 하듯 중국과 싸우지 말라고 훈수를 두고 나선 것이다.
그 타이밍도 그렇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백신절벽이니, 백신 디바이드 등의 소리가 높다. 백신을 구하느냐, 못하느냐. 한국 국민의 생명권이 달린 백신문제를 놓고 비명이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내달에 있을 한-미 정상회담이다.
바로 이런 시점에 문 대통령은 마치 바이든 미 대통령이 들으라는 듯이 서슴지 않고 친중에, 반미발언을 퍼붓고 있다. 외교의 ABC도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그의 인식세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미몽 속을 헤매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문재인 정부를 타깃으로 열린 미 의회의 인권청문회. 그 수모에 대한 신경질성의 반발인가.
이런 정황에서 문 대통령은 미국과의 정상외교를 통해 백신을 구해올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기를…’이 많은 한국 국민의 염원이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지는 그런데 그 염원에 찬물을 끼얹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바이든과 문재인의 만남을 과거 조지 W 부시와 김대중의 만남과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20년 전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과 러시아간의 뜨거운 이슈였던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조약(ABM)과 관련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의 입장에 동의했다. 새로이 출범한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불과 한 주 앞둔 시점에서 일어난 해프닝이다.
김 대통령은 그리고 부시와의 회담에서 자신의 햇볕정책을 강의하는 듯 한 태도로 임하면서 클린턴 전 행정부의 북한정책을 계승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 회담은 최악의 외교참사로 끝났다.
대놓고 친중 행보에 김정은 역성만 든다. 그러면서 쿼드가입 권고 등 미국의 요구는 번번이 거절했다. 그 문 대통령이 바이든에게 북한과 마주 앉고 중국과 협력하라고 충고한다.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한미공조는커녕 백신도….
백신대란과 함께 문 정권은 침몰하는 것은 아닐까. 불현 듯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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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