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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라이브스 매터’

2021-04-21 (수)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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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Covid-19 팬데믹의 책임을 중국에 전가시키며 연일 ‘중국 때리기’를 계속한 이래 아시안들을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만난 동양인에게 칭크(Chink-뙤놈), 구크(Gook-황인종) 등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퍼붓는 것은 예사이고 아시안 노인들에게 폭력을 휘둘러 상처를 입히거나 심지어는 목숨까지 빼앗고 있다.

최근 빈발하고 있는 아시안 대상 증오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대다수는 뜻밖에도 흑인들이다. 같은 유색인종으로서 백인들의 유색인종 차별에 함께 연대해 나가야할 흑인들이 오히려 백인보다도 동양인 차별에 앞장서고 있는 듯하여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왜 흑인들은 같은 유색인종인 아시안을 미워하는 것일까. 흑인들 입장에서 보면 백인들은 과거 노예시절 주인으로 모시던 상전들로 아직도 두렵고 어려운 존재일 것이다. 반면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닌 아시안은 왠지 이질감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게다가 공부도 잘하고 비즈니스에서도 뛰어나니 아니꼽고 샘도 난다. 굴러들어온 돌 같은 아시안들에게 토박이인 흑인들이 밀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여러 민권운동 지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캠페인으로 1970년대 이후 크게 개선되었다. 그 결과 최초의 흑인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백인과의 소득격차라든가 교육 불평등 등이 사회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흑인들에 대한 경찰폭력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 때마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BLM)’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시위에는 흑인들 뿐 아니라 많은 백인과 아시안들도 동참하고 있다.

만약 흑인들이 아시안 혐오범죄를 앞장서서 저지른다면 그 순간부터 BLM 운동은 명분과 동력을 잃어버릴 것이다. 타인종을 차별하는 흑인들이 백인들에게 흑인차별을 하지 말라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겠는가.

아시안 아메리칸들이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지 않고 당당한 미국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지키려면 경제력이나 사회적인 신분상승 못지않게 정치력의 신장도 중요하다. 우리의 2세 3세들을 미국사회의 지도자로 키워내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할 것이다.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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