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람쥐와 새 모이

2021-04-10 (토) 송윤정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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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겸 새 모이를 달아놓을 스탠드를 하나 설치했다. 뒷마당 키큰 자작나무 앞에 내 키의 한 배 반이나 될 기다란 막대에 각기 다른 새 모이 네 통과 접시 두 개를 놓았다. 한 접시에는 물과 한 접시에는 새 모이를 담았다. 자연에 관심을 주다 보니 모이와 새 모이 집 종류에 따라 다른 새들이 모인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평평한 접시와 같은 곳에 놓인 모이 (platform feeder)는 뒷 마당에 종종 나타나는 모닝도브(mourning dove)가 좋아하고 나무나 높은 막대 위에 달아 놓은 모이 (house feeder)는 내가 좋아하는 카디널과 블루제이가 좋아한단다. 또한, 긴 통의 모이(tube feeder)엔 참새, 제비, 박새(titmice), 그로스 등이, 수엣 모이(Suet feeder)엔 딱따구리, 치카디, 제이 등이 몰려든다고 한다.
새 모이를 설치하고 나니 다람쥐가 타고 올라가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잠이 깨자마자 창밖을 내다보니 다람쥐가 막대 위에서 양쪽 모이통을 오가며 먹고 있고 카디널과 다른 작은 새들은 나무 위에 혹은 땅 위에서 다람쥐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새 모이 반대편 뒷마당에 작은 막대를 세워 다람쥐 먹이통을 달아주었다. 다람쥐가 먹기 쉽도록 땅에서 뻗으면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다람쥐가 자신의 먹이를 찾으면 새 모이 막대에 올라가 곡예를 하며 새 먹이를 먹어 치우지 않겠거니 생각했다. 나의 순진한 생각은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보기 좋게 무너졌다. 어느새 텅 빈 다람쥐 먹이통을 남겨놓고 다람쥐는 또다시 새 모이 막대 위에서 곡예를 하고 있었다.

이번엔 기다란 통을 막대 중간에 달고 못쓰게 된 아이 우산을 그 위에 설치해 다람쥐가 막대를 타고 올라가지 못하도록 했다. 이제는 못 올라가겠거니 생각하며 창가에 서서 지켜보았다. 다람쥐 한 마리가 막대 근처에 왔다 통에 가로막힌 막대를 지켜보더니 막대 뒤 자작나무로 달려 올라갔다.


봄이 오지 않아 아직 가지만 앙상한 나무로 올라가 새 모이 막대 근처 가지로 가더니 가지에서 막대로 가볍게 떨어져 내렸다. 그리곤 또다시 새 모이 통에 매달렸다. 먹이에 이토록 집요한 다람쥐에 대해 궁금해져 찾아보니 다람쥐는 겨울철이 되면 겨울잠을 자고 겨울잠에 들기 전 평소보다 훨씬 많이 먹고 먹이를 땅속 깊숙이 저장한다고 한다. 겨울잠에서 깬 다람쥐라 저토록 먹이에 집요하게 매달리나?

다시 뒷마당에 나가 막대를 자작나무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이제는 막대를 타고 올라가지도, 나무에서 점프해 막대에 내려앉지도 못 하겠거니 생각했다. 어느 순간 창밖을 보니 다람쥐가 또 새 모이통에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어떻게 올라갔을까 싶어 창가에 서서 바라보고 있자니 땅에서 점프해 막대 위에 달아 놓은 통 위에 안착한 후 다시 막대를 기어 올라갔다.

막대에 매달려 새 모이 집에 팔을 뻗어 입을 대고 먹자니 성에 안 찬 다람쥐는 모이통을 뒤집어 모이를 땅에 쏟아부었다. 다른 다람쥐와 몇몇 새들은 땅에 떨어진 그 모이를 쪼아 먹고 있었다. 저토록 집요한 다람쥐 한 마리가 있어 어떤 생명은 먹이를 거저먹는구나.

그 다람쥐를 보며 “집요함은 아름답다. 그것이 예술을 만들어낸다.”고 한 조스 휘던의 말이 떠올랐다. 지난 가을 미국 작가지망생 수업에 참여했을 때 첫 수업으로 세이 쇼나곤의 ‘혐오스런 것들’(Hateful Things)을 읽으며 작가이자 초빙교수인 커터 우드가 말했었다. “싫어하는 것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다양한 묘사할 수 있다는 건 거의 집착에 가깝죠.” 전체 42문단에 마지막 세 문단이 연결되는 것을 고려하면 자신이 혐오하는 39가지를 열거한 글을 읽고 그는 첫 글쓰기 연습으로 무언가에 집착하는 것에 대해 쓰라고 했다.

어쩌면 예술가가 되기 위해선 집착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무언가에 집요하게 매달려 본 적이 없다.

거꾸로 매달려 모이를 먹는 다람쥐를 보며 나는 그 집요함을 배운다.

<송윤정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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