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울어진 운동장 담론

2024-10-18 (금) 제이슨 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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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은 내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들을 운명적으로 타고 난다. 금수저와 흑수저, 약소국과 강대국, 건강한 사람과 장애인, 머리가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등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말은 기울어져 처음부터 어느 한쪽이 유리한 경기를 치루어야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권에서, 특히 선거때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한국 미국 할것 없이 힘자랑을 하는 몇몇 주류 언론이 어느쪽 편을 드느냐에 따라 기울기의 정도가 심해지기도하고 덜해지기도하는 것이다.

개개인의 인생을 놓고 보면, 한국 전체 국민의 하위 50% 수입이 전체 국민들 수입의 1%에 불과하고 상위 50%의 수입이 99%라고하니, 이말은 곧 기회의 사다리가 사라진 사회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젠 개천에서는 용이 나오지 않는다. 옛날 시골 마을에서는 어느 집 자식이 사법고시에 합격하거나 명문대에 들어가면 동네 어귀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리고 큰 잔치가 벌어졌다. “개천에서 용났다”며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던 것이다. 요즈음은 명문대 들어가는 조건이 할아버지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으로 일반화 되었다. 아빠 혼자 벌어서는 사교육비 감당이 않되니까 원래 부자인 할아버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너무나 심해져 아무리 노력해도 그 격차를 좁힐 길이 없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는가에 따라 미래가 결정 된다. 청년들은 절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주된 정서는 ‘집단적 무력감’이며, 심리학에서는 무기력을 에너지가 바닥나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생각보다 더 사람을 힘들게한다. 무기력한 사람들은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서 외부 상황이 바뀌기만을 기대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위해 상황을 바꿔주지 않는다. 내가 뭔가를 바꿀 수 있는것도 아니다.

인생이란 내 뜻대로 흘러가 줄때도 있지만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더 많다. 그러한 사실은 우리를 슬프고 힘들게 하지만 할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용기를 내어 다시 인생의 키를 잡고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작은 결실이라도 맺는 날이 올것이다. 나쁜일이 반드시 나쁜일이라는 법도 없다. 가끔은 그때는 나쁜일이었지만 지금은 좋은일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노력의 결과가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괴로어 하지 말아야한다. 인생이란 무엇을 하던 시간은 흘러간다. 무기력의 함정에 빠져 “어차피 안될걸 뭐…”라고 생각하든, 희망을 잃지 않고 무언가를 시도하든 10년쯤 뒤의 인생은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건강한 인생이란,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으며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내가 잘났다고 혼자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부딧치며 때로는 승자가 되기도하고 때로는 패자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욕심을 조절하여 행복을 추구하며 꿈꾸던 세상을 이루려 노력하며 살아가야한다. 인간의 뇌는 희망과 절망,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공유할 수가 없다. 희망에 부풀었을 때는 절망을 잠시 내려 놓고, 행복한 순간에는 불행을 잊고 사는 것이다.

그것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가진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못가진 것을 탓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며,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위를 보고 아래를 보지 못한 까닭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탓하지 말자.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 길이 보일것이다.

<제이슨 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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