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날로그 재미

2021-04-05 (월)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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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3월21일 오전 5:50 소셜미디어 트위터의 최고경영자 잭 도시가 “지금 막 내 트위터를 설정했다(just setting up my twttr)”는 첫 트윗을 올린 이래 15년이 지난 지금 트위터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당시 경제면을 담당하면서 새로운 경제용어를 소개하는 박스기사로 ‘트위터’에 대해 소개할 정도로 신기했었다.

지난 2월 폭설이 내리는 날, 딸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서너살 손주들이 ‘프로즌 2’ 음악을 들으며 창가에 펑펑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렉사, 뮤직 들려줘!” 하니 창틀에 놓인 자그마한 공 같은 스마트 스피커 에코에 불이 켜지면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다시 “알렉사, 오늘 날씨 어때?” 하니 “오늘은 오후 7시까지 눈이 내립니다”고 대답을 한다. 아마존에서 저렴한 가격에 샀다는 이 스마트 스피커를 꼬마들이 애용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2014년 11월 발표된 아마존 알렉사(Alexa)는 인공지능 비서 시장의 선두주자로 음악재생, 날씨 및 교통정보, 뉴스 브리핑, 상품 구매, 책읽기 등은 물론 금융, 여행 등 생활과 산업 현장 어디서나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0년은 AI 서비스 사용화가 주요이슈였고 AI가 사람과 대화하는 챗복 서비스인 ‘이루다’가 나왔지만 도덕적 해이현상이 문제화되어 서비스 개시 한달도 못되어 중단되었다.

‘알렉사’를 부르면 마치 ‘도깨비 방망이’처럼 원하는 것이 툭 튀어나오는 전자기기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앞으로 할머니 나이가 되는 60년 후, 2081년 세상은 얼마나 더 발전해있을까.

영화 ‘승리호’는 2092년을 무대로 병든 지구를 떠나 우주위성 궤도를 돌며 우주 쓰레기를 청소한다. 드라마 ‘시지프스’에서 2035년은 핵전쟁으로 한국이 폐허화되고 그 미래를 바꾸고자 한 구원자가 미래에서 현재로 온다. 60년 후면 살아있지도 않겠지만 이런 세상에서 살 자신이 없다.

현재 우리들은 온라인과 비대면 서비스로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가상세계를 스스로 창조하는 게임을 즐긴다. 인공지능, 확장현실, 5세대(5G) 이동통신 같은 신기술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어뜨린다. 드라마고 영화니까 현재와 미래를 만나고 오가기도 한다 치자, 결국 영화와 드라마 속과 같은 세상이 올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정보통신기술이 급속 발달하면서 디지털 문명을 여러모로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신기술을 따라잡기가 헉헉댈 정도로 모든 것이 초고속 발전 중이다. 디지털의 세계가 좋기도 하지만 아날로그 세대인 본인은 좀 버겁다. 가늘고 여린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싹 싹 눌러 원하는 어린이프로와 게임을 찾아내는 세살배기를 보고 온 다음날, 집에서 콩나물을 기르기 시작했다.

콩나물 콩을 사다가 하룻밤 물에 불린 뒤 구멍 뚫린 바구니에 넣고 시커먼 보자기를 씌운 후 아침저녁 물을 주며 1주일을 키웠다. 토요일 날 집으로 온 손주들에게 노란 콩나물 바구니를 보여주니 서로 달려들어 콩나물을 뽑아서 건네준다. 반찬 만들란다.

다음에는 간장 만들기에 도전했다. 메주 한 덩이를 사다가 씻어 말린 후 천일염을 하룻밤 물에 풀었다. 말린 북어를 소독한 항아리 밑바닥에 놓고 거른 소금물을 부은 다음 메주를 넣고 참숯과 마른 붉은 고추를 넣었다, 커다란 돌도 구해 메주가 뜨지 않게 누르고 망을 씌운 다음 아침 출근길에 항아리 뚜껑을 열고 유리창을 조금 열어둔다.

단독주택이 아닌 아파트이다 보니 장이 익어가는 냄새가 보통 고역이 아니다. 아침마다 내가 왜 이걸 하려했지 후회하지만 맑고 감칠 맛 나는 간장 얻을 생각에 장이 뜨는 냄새를 참고 있다. 그런데 간장 달이는 냄새를 어쩐다, 그것이 문제다. 간장이 잘되면 다음번에는 고추장 만들기, 아날로그 도전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 삶은 점점 더 디지털 시대로 휙 휙 변해가지만 나라도 천천히 가려는 것이다.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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