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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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트레일러 하우스

2021-03-24 (수) 박희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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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타고난 핸디맨이다. 목수 일이나 전기 만지는 일을 배울 기회도 없었을텐데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전기가 나가거나 뒷뜰에 전기를 연결해야 할 때, 혹은 오래된 수도관이 터졌을 때, 기술자를 부르지도 않고 혼자서 척척 잘 해낸다. 변기를 새것으로 교체하기도 하고 뒷뜰에 데크도 만들고 창고도 지었다. 이런 일을 할 때마다 나를 수석보조로 쓰며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잘 받쳐주지 못한다고 잔소리를 하면, 때로는 안 도와준다고 억지도 부리지만, 대부분 즐거운 마음으로 도와준다. 가끔 칭찬 삼아 어떻게 그런 일을 잘 하느냐고 하면 “남자들은 다 할 수 있는 거야!”라고 대답한다. 유년시절 단독주택에 살 때, 오빠들이 아주 가끔 형광등 갈아끼우는 것밖에 본 적이 없는 나는 남편의 달란트가 신기하기만 하다.

작년에 산호세에 있는 트레일러 파는 곳에 나를 데리고 가서, 필요없는 것을 사지 말라고 반대하는 나에게 여러 종류의 트레일러를 보여주며, 만약에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그것을 SUB 뒤에 매달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야 된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며, 몇번을 가서 보고 또 보고, 여러 궁리를 하더니, 결국 18피트 짜리 트레일러를 사가지고 꼬불꼬불 위험한 하이웨이 17을 넘어올 때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마치 원하는 장난감을 손에 쥐고 의기양양해 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뒷뜰에 트레일러를 들여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년이 다 되어, 팬데믹으로 자유시간이 많아지니 트레일러 하우스를 짓겠다고 한다. 홈디포에 가서 목재와 공구도 사고 여러 부품을 사가지고 와서 제법 집의 모습을 갖추어 가던 어느 날, 잠시 방심하다 망치로 엄지 손가락을 내려쳐서 손톱이 검게 변하고 너무 아프다고 손을 놓고 한달째 방치하고 있다.

일전에 창고를 지었을 때, 옆집에서 불법 건물을 지었다고 시티에 신고를 해서, 시에서 인스펙터가 나와 불법건물을 철거하라고 하니 정말 막막했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니, 매달 해체 작업 분량을 주고 그후 반년동안 집에 와서 진척 상황을 체크하고 갔던 기억이 있어서, 문젯거리를 만들지 말라고 잔소리하면서도 공정이 하나씩 진행되어 갈 때마다 간식도 가져다주고 사진도 찍어주니 아주 좋아한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지어놓은 트레일러 하우스에서 취미생활도 즐겨보지 못하고 6월달에 이사를 가게 되었으니 좀 아이러니하다.

<박희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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