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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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혐오증

2021-03-23 (화) 서옥자 한미 국가조찬기도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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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9일,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이 아시안 혐오범죄의 사건 현장인 조지아 주 애틀랜타 시를 방문했다. 아시아계 지도자들과 실무 대책회의도 하고 충격 속에 쌓인 희생자들의 유가족도 위로해주며 곧바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나는 대통령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나라의 지도자로서 이번 사건에 자상하게 관심 써주는 마음에 CNN의 한국계 리포터도 눈물을 글썽이며 현장취재를 보도했다. 트럼프 때와는 참으로 대조적인 모습이다. 트럼프라면 현장 방문을 생각이나 했을까. 2017년 8월에 있었던 샬럿에서의 극단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동 때 오히려 그들을 옹호하고 나선 기억이 떠올랐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아시안 혐오는 트럼프의 중국, 우한 바이러스라는 선동적 발언과 무관하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시안 지도자들과 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아시아인들은 “complacency”, 즉 순종적이며 정중하다고 언급하며, 곧 이어 아시안들은 문제가 있으면 “speak out”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바로 내가 늘 아쉬워하던 아시안들의 이슈다. 우리는 소리를 내야할 때 소리를 내야한다. 우리의 의무이고 권리이기에.


아시안 들의 말하고 싶어도 침묵하고, 무조건 순종하는 미덕 아닌 미덕에 대하여 나는 사회활동을 해오면서, 그리고 오랜 세월 미국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왔었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에서는 침묵은 금이라는 교육을 받았다. 특별히 식사할 때는 입을 꼭 다물고 말하지 않도록. 그런데 미국에 와서 오랜 세월을 살아보니 자기표현을 분명히 하고, 식사 때는 다른 이들과 교제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스타일임을 깨달았다.

미국 대학 내에서도 아시안 교수에 대한 인종차별적 대우가 많이 있음을 들어왔다. 한 사회학 일본 교수는 본인이 가르치는 대학에서마다 자주 밀려난다고 분노하며, 또 그 주위에 아시안 동료 교수들도 승진이나 해고(lay off)가 있으면 첫 번째 타깃이 아시안 교수라고들 했다.

다른 백인 교수들한테 내가 직접 들은 바, 아시안 교수들은 이러한 back benching(뒷자리로 밀려남)을 당해도 조용하게 순종하며 자리를 떠나기에 학교 당국으로서는 다루기가 쉬워서 그런다고 했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이번 사건에 분노를 더하는 것은 경찰 당국까지 인종혐오 범죄를 방어해줬다는 것이다. 용의자는 본인의 형 감량을 줄이기 위해서 성 중독자로 둘러댔겠지만 말이다. 근래에 놀라운 것은 백인 극단우월주의자들이 미국사회에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국가적 내분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는 흑인 시위, 폭동, 아시안의 인종갈등이 미국사회에 침투하기 시작해 왔다. 특별히 지난해부터 악화된 아시안 혐오범죄는 단순한 돌발 사건이 아니다. 게다가 아시안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invisible being)로 흑인들로부터도 어이없는 인종차별의 희생 대상이 되어왔다.

오바마 대통령 집권 당시 소수민족 평등에 관한 정책과 그에 따른 공공대화(public dialogue)를 주시하며 극우파성향 보수파 백인들이 존재 위협을 느꼈단다. 유명한 작가 제임스 볼드윈(1924-1987)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심리 상태를 “햇빛 비치는 놀이터”(Sunlit Playpen)이라고 분석했다. 즉 그들만의 평안한 놀이터에서 있으면 그들만의 삶이 좋을거라는 기대감, 그러면서 미국사회의 조직구성과 미국 민주주의 체제를 해체시킬 수도 있는 인종차별주의를 무시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 정부가 아무리 훌륭한 법과 정책을 만들어도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발전할 수가 없다. 성경에 모든 지킬만한 것보다 무릇 네 마음을 지키라고 했다. 이는 생명의 근원이 여기에서 남이라고 했다. 인종과 민족의 벽을 뛰어 넘어 서로 화해하고 화합하여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 곁에 찾아온 따뜻한 봄 햇살처럼.

<서옥자 한미 국가조찬기도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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