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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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3월, 드디어 꽃이 핀다

2021-03-16 (화) 채영은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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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을 나만의 한마디로 표현하고자 하면 단연 ‘설렘’이라고 할 수 있다. 1년 중 3, 4, 5월이 봄이라고 뇌리에 박혀 있는 탓인지, 3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새로운 시작과 두근거림으로부터 파생된다. 3월마다 새로운 교실 공간에 재배치되어 새로운 선생님과 교과서와 친구들을 알아갔던 유년 시절로부터 시작하여, 진달래 향기가 가득했던 캠퍼스 곳곳에 또각또각 구두소리로 어지간히 누비고 돌아다녔던 20대의 시간들이 뭉게뭉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후 지구촌 곳곳에서 20여년을 살면서, 9월마다 새학년이 되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3월이면 뭔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리셋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 비슷한 것이 항상 자리했다. 산후풍으로 남들보다 추위를 극심하게 타는지라 바람결에 온기가 실린다 싶으면 그것만으로도 가슴 한켠이 설레고 새로운 기대가 생겨나곤 했다.

3년 전 3월, 부푼 마음으로 어바인을 떠나 산호세로 떠나왔건만, 도착해 보니 정작 내부 바닥 공사가 덜 끝난 상태여서, 가구 배치나 짐 정리는 엄두도 못낸 채 한켠에 쌓아두고 잔여 공사와 그득한 먼지와 쨍한 소음 속에서 멍때리고 있었다. 며칠째 이어지는 작업 지체와 변명에 짜증과 피곤함이 차오르던 때, 무작정 강아지를 끌고 뛰쳐나온 날 맞아준 것은 만개한 주변의 꽃들과 바람과 하늘 풍경이었다. “어서 와. 여기도 충분히 살 만한 곳이지?” 어리버리 신참을 반겨준 낯선 동네의 완연한 봄기운 덕분이었는지 벌써 네번째 봄을 가슴벅찬 감사함으로 맞이한다. 지금도 집의 차고 문이 열리면 정면에 일렬로 늘어선 나무들에서 새하얀 벚꽃들이 환하게 반긴다. 차 타고 큰 길로 내려가다 보면 얕은 언덕에 노란 유채꽃이 점점이 흩어져 있고, 동네 모퉁이를 돌다보면 아카시아와 라일락 향기가 스르르 감겨온다.

하루하루 변화없는 일상이 흘러가는 것 같아 보여도 모든 생명은 자신만의 때를 기다려 차곡차곡 계절의 준비를 한다. 코로나로 인해 막막하기만 했던 혼돈의 시간이 하루하루 겹겹으로 쌓이고 쌓여 일년 만에, 마침내 꽃이 피는 계절에 다시금 이르렀다. 간밤의 비바람 속에 촉촉히 물기를 머금고 아침마다 더욱더 환하고 싱그럽게 피어나는 무수한 꽃잎들. 어떠한 상황에서든 날 자꾸 설레게 하는 꽃들이 지천에 가득한 이 아름다운 3월에 한 개인으로서의 나는 어떤 꽃잎 한 장을 푸르른 하늘 향해 피워낼 수 있을까?

<채영은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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