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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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야의 지하비밀도서관

2021-03-13 (토) 김은영 기후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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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많은 시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는 ‘책’이다. “이세상의 모든 책들이/그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하지만 남몰래 가만히 알려주지/그대 자신속으로 돌아가는 길을....해와 달과 별/그대가 찾던 빛은/그대 자신속에 깃들어 있으니. 그대가 오랫동안 책속에 파묻혀/구하던 지혜/펼치는 곳마다 환히 빛나니/이제는 그대의 것이니”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의 북서쪽 7km 떨어진 곳에 다라야라는 도시가 있다. 아사드 독재정권은 반군세력이 있다하여 2012~16년까지 봉쇄하고 드럼통 안에 고철과 폭발물을 채운 드럼통 폭탄을 하루에도 20개 이상 퍼부었다. 드럼통폭탄은 터지면서 고철이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가 아무데나 가서 박히는 끔찍한 살상무기다.

이스탄불 주재 프랑스 기자 델핀 마누이는 어느날 페이스북에서 사진 한장을 발견했다. “지옥 같은 시리아에서 혈흔도 탄흔도 묻지 않은 생경한 사진, 책이 빼곡히 쌓여있는 벽으로 둘러싸인 두 젊은이의 옆모습”이었다. 묻고 물어서 어렵게 사진을 올린 사람을 찾았다.


무자헤드 아흐마드, 2015년 10월15일 열악한 인터넷으로 대화는 자꾸 조각이 났지만 마누이 기자는 ‘조각난 진실을 모으는 일’을 위하여 계속 말을 걸었고 아흐마드는 쉴 새 없이 퍼붓는 폭격과 허기짐 속에서 그들만의 은밀한 요새, 지하비밀도서관에서 “미친듯이 책을 읽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흐마드는 2013년 말 친구를 따라 무너진 담장을 넘어 한 건물로 들어갔다. 거실로 들어서자 한 줄기 빛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마루에 흩어져 있는 책의 잔해를 비추었다. 천천히 무릎을 꿇고 시꺼먼 먼지를 뒤집어 쓴 책 하나를 집어 올렸다. 두터운 먼지가 덮인 책 겉장에 손톱이 긁히면서 “무슨 악기 소리”가 남을 느꼈다. 그때 갑자기 “몸이 떨리고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한 아흐마드는 “도망치듯 책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면서 “처음 시위에 나섰을 때와 같은 해방의 전율이었어요”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후 40여명의 친구들과 함께 비행기 소리가 잦아들 때쯤이면 부삽을 가지고 책을 수집하러 다녔다. 한달여 동안 1만5,000여권의 책을 찾아냈고 비행기의 사정거리를 좀 벗어난 건물의 지하공간을 찾아 옮겼다. 다라야의 지하비밀도서관에서 반아사드 젊은이들은 새로운 정신을 탐구하면서 작은 촛불 같이 조금씩 어두운 밤의 출구를 찾아갔다. 실지로 그 촛불은 독서로 찾아낸 자신들 속에 깃든 빛이었다. 그 빛은 폭탄으로 파괴할 수 없다.

다행히 살아남은 아흐마드는 기자와의 첫 대면에서 말한다. “우리는 끝난 것이 아니예요. 아사드가 한 도시를 무너뜨릴 수는 있어도 우리들의 생각은 무너뜨릴 수 없지요. 저는 이렇게 자유로운 느낌이 든 적이 없어요.”

책을 없애려 했던 모든 독재자들이, 중국의 문화혁명이나 독일의 나치가 그러했듯이, 이 세상의 모든 책을 불태울 수는 있어도 책이 찾아 준 독자의 마음속 빛은 자라서 언젠가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기 때문이다.

<김은영 기후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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