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싸우면서 크지 않는 세상

2021-03-06 (토)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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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면서 큰다’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애들이 싸우면 얼마나 싸우겠냐고 하겠지만 요즘 애들 싸움은 예전 같지 않다. 서로 한 대씩 쥐어 박고 끝나는 싸움이 아니라 지독하게 악랄하고 폭력적이며 흉악한 범죄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들의 학교 폭력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아직 진위 여부는 다 밝혀지지 않았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스포츠 선수들과 청순하고 착한 모범생 이미지의 연예인들이 학교 폭력의 가해자였다고 하니 대중들이 느끼는 배신감이 크다. 나 또한 좋아했던 배우가 이번 논란에 연루되어 충격이 컸다. 더욱이 씻기 힘든 아픔을 지닌 피해자들이 스포츠 선수와 연예인으로 승승장구하는 가해자들을 보는 마음이 어땠을지 차마 짐작도 가지 않는다.

청소년기에 아이들에게 학교라는 울타리는 또 또래 친구들과의 교우관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큰 의미가 있다. 교과 과정 동안 한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 폭력에 시달려도 보복이 무서워 도움을 청하거나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즘은 스마트폰 기기의 발달로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24시간 온라인 상에서 따돌림에 시달리기도 한다. 청소년기에 당한 폭력이나 따돌림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거나 자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가해자는 과거를 지운 채 대중 앞에 뻔뻔하게 얼굴을 비추고 있다.


어떤 이들은 철없는 나이에 저지른 과오를 너무 들추어내어 이슈화시키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하지만 한 살짜리 아이도 때리면 아프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잘못된 일임을 안다. 잘못된 일을 저질렀으면 이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하고 벌어진 일에 책임을 질 줄도 알아야 한다. 너무 어려서 뭘 잘 몰라서 그랬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못한다. 더욱이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스타들에게 이는 그저 사생활의 영역이 될 수 없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보니 학교 폭력이 더 이상 남들 이야기가 아닌 내 아이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아이가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고 또 동시에 절대 가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니 나아가 학교 폭력이 근절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떻게 가르치고 인도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남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금부터라도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한다. 우선 이번 학교 폭력 논란이 그냥 흐지부지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사태를 끝까지 지켜보고 관련자들의 콘텐츠는 소비하지 않을 작정이다.

쉽지 않겠지만 내 아이는 그리고 내 아이와 함께 자랄 친구들은 싸우면서 크지 않는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적당히 다 싸우면서 큰다는 말속에 가려 아픈데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홀로 상처들을 가슴에 품고 가지 않았으면 한다. 치고받고 싸우는 게 으레 있을 수 있는 일인 것처럼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는 세상에서 살지 않아야 한다. 약자 없는 세상은 만들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약자가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따돌림을 당하지 않고 폭력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보호 장치와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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