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3박 4일 미국 횡단 등교
2021-03-02 (화)
채영은 (주부)
팬더믹 상황에서 3월에 학교서 집으로 갑자기 와야 했던 아들과 6개월 간 반강제적 동고동락한 작년. 9월 개강에 맞추어 떠날 준비를 하나 했더니, 갑자기 코비드19 위험에 비행기는 절대 안타고 싶다고, 학교 쪽에 중고차 초이스도 얼마 없으니 아예 이 지역에서 구입하여 몰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다른 때도 아니고 이 시국에 학교까지 차로 간다는 것이냐 이 엄마는 완강히 반대하며, 만약 두 부자가 가더라도 둘이 번갈아 운전하고 아빠는 비행기로 돌아오면 되겠지 내심 기대했건만... 아빠는 아이 혼자 갈 수 있다고 흔쾌히 아이의 손을 들어줬다.
부랴부랴 출발 1주일 전에 넥스트도어(Nextdoor)를 통해 중고차를 구해서 정비하고 서류작업을 마친 후 차는 온전히 아이의 소유가 되었다. 한시적 위치추적 앱 깔기, 하루 10시간 이상/야간 운전 안하기, 때가 때인 만큼 위생적인 숙소로 잡기 등을 합의했고, 아이는 맵퀘스트(Mapquest) 앱으로 3박 4일간의 구체적 일정을 촘촘히 짜왔다. 낯선 도시나 도로에서 갑작스런 돌발 상황을 맞게 되면 어쩌나, 혼자인 걸 노리는 무슨 사건에라도 휘말리는 건 아닌지, 예전에 봤던 영화 장면들은 왜 하필 줄줄이 떠오르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씩씩하게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갔고 4일째 저녁 학교 옆 거처에 무사히 잘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아빠의 지인이 살면서 남자의 인생에 꼭 혼자 해봐야 할 것으로 로드트립을 언급한 기억이 나서 이번 기회에 꼭 시도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앞으로 살면서 직장이나 가정에 매이게 되면 몇 번이나 그럴 수 있겠나 싶기도 하다. 운전만 36시간에 2,100마일 그 긴 미국 횡단 거리를 혼자 가는 동안 많은 사색과 음악에 잠기고 나름 자신의 미래를 계획했을 내 아이. 낯선 도시 기숙사에 혼자 내려놓고 올 때의 철렁한 기분만큼이나 이번엔 넓디넓은 세상으로 아이를 혼자 떠나보내며 오묘한 기분을 실감한 동시에, 도전하는 젊음과 패기가 마냥 부러웠었다.
한편 아이가 떠나가던 날이 한국 시간으로 할아버지 1주기 기일이었다. 풍광 좋은 국도변에서의 트럼펫 연주 영상이 메신저로 띠링 도착했을 때에, 이런저런 설명 없이도 아이만의 추모 방법에 가슴이 뭉클해 왔다. 할아버지께서 하늘에서 흐뭇하게 들으시고 하나뿐인 손자의 가는 여정 내내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켜주신 덕분이라 생각한다.
<채영은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