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청어

2021-02-27 (토) 김은영 기후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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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갓 잡은 청어를 숯불에 구워먹는 맛을 아는가? 기름이 잘잘 흐르는 껍질 속에 도톰한 살점,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입에 살살 녹는다. 청어는 찬 바다에 무리지어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해안으로 올라온다. 그 개체수가 너무나 많아서 원양어선에서는 청소기로 흡입해서 잡았다고 할 정도이다. 19세기말까지도 부산 해안에 청어떼가 몰려들면 배를 대지 못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병사들을 동원해 청어를 수십만마리를 잡아 말려서 과메기로 만들어 군사와 피난민들의 단백질원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하멜의 고향 네덜란드에도 청어가 많이 잡혔다. “동북쪽으로는 넓은 바다가 있다. 12월에서 3월까지는 청어가 많이 잡힌다. 12월과 1월에 잡히는 청어는 우리가 네덜란드의 북해에서 잡는 것과 같은 종류이며, 2월과 3월에 잡히는 청어는 네덜란드의 튀김용 청어처럼 크기가 작은 종류이다.” 조선에 억류되어 사는 동안 고향 네덜란드에서 온 청어를 조선에서 보면서 사무치는 고향생각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청어로 인해 자본주의가 탄생했다고 하면 경제학자들은 무어라고 말할까? 네덜란드는 청어잡이가 국가산업이었다. 하멜이 표류할 무렵에는 네덜란드 인구의 3분의 1이 청어와 관계된 산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청어로 부국이 된 네덜란드 정부는 동양무역로를 개척하고자 큰 규모의 배를 주조하기 위한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정부는 동인도회사를 만들고 이를 위하여 선주들에게 투자하게 했다. 투자자들에게는 동인도회사의 이름으로 권리증서를 만들어주었는데 이들이 최초의 주주들이고 이로서 최초의 주식회사가 만들어졌다.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설립된 7년후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생겼다. 이로써 자본주의가 탄생했다.


자본주의는 국가의 GDP를 올려주었고 인구증가와 인터넷 보급으로 세계는 더 가까워졌다. 소비를 하지 않으면 경제성장은 없다.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서는 물건 값이 싸야한다. 물건의 값이 싸려면 원재료의 채취, 생산, 소비, 폐기의 컨베이어벨트를 가능한 한 빨리 돌려야한다. 이 한 방향의 컨베이어벨트는 지구의 땅과 바다를 쓰레기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발생되는 독성 화학물질과 플라스틱, 온난화기체는 지구의 하늘과 땅과 바다로 쏟아진다.

바다에 풍부한 청어로 부국이 된 네덜란드의 최초의 주식회사 동인도회사로 시작된 자본주의의 결과는 청어를 포함한 해양동물을 멸종의 위협에 놓이게 했다. 팬데믹 이후 리셋 되는 새로운 자본주의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기관총이 아니라 자연을 복구하고, 물건들이 폐기된 후에도 다시 지구의 자원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순환의 사이클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싱싱한 청어떼들이 다시 지구의 바다를 가득 메우고 산호초가 화려하게 파도에 일렁이는, 하멜이 표류했던 300여년 전의 바다로 복구시킬 수도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져본다.

<김은영 기후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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