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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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노천 온천

2021-02-24 (수) 박희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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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추운 날씨에 주로 건조한 실내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습진이나 알레르기성 피부염이 생겨 온몸이 가렵다고 하신다. 샤워한 후 바디 로션도 바르고,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라고 말씀하신다.

수 년 전 나도 건조한 피부로 인한 습진으로 한동안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코코넛 오일과 자연 발효 사과 식초를 섞어서 바르니 습진으로 인한 가려움증 해소에 효험이 있었다. 또, 뒷뜰에서 자라는 싱싱한 알로에 베라를 길이로 반을 잘라서 즙을 발랐더니 가려움증이 완화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면역력이 약해져서 하루가 지난 음식만 먹어도 두드러기와 알레르기성 피부염이 도졌다.

온천욕이 좋다고 하여 가까운 곳에 있는 유황 온천을 찾아보았다. 북가주에는 유황 온천은 없고 대부분의 온천이, 아주 미소한 양의 유황이 포함된 미네랄 온천이다. 지인이 요세미티 동쪽문을 지나서 북쪽으로 가면 브릿지포트라는 마을 야산에 노천 온천이 있다고 알려줘서 남편과 함께 이름도 없는 이곳을 찾아갔다. 놀랍게도 이 노천 온천에서 미국사람들은 남녀가 함께 자유롭게 아무것도 입지 않고 탕 밖을 오가고, 탕 안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민망하고 눈 둘 곳을 몰라, 옆에 있는 다른 탕으로 갔는데, 그곳에서는 여자들끼리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우리도 수영복을 입고 따뜻한 탕 안으로 들어갔다. 자연으로 만들어진, 깊지 않은 욕탕은 앉으면 가슴까지 잠겼고, 석회화 온천이라 물은 맑지 않고 회색빛이었고 매끄러웠다. 6월인데도 눈이 쌓인, 시에라 네바다 산맥 정상을 보며, 아주 뜨겁지 않은 탕 속에서 땀을 내며 시원하게 온천욕을 즐겼다. 그후 한동안 습진에서 해방되었다.

얼마전 한국에서 방문한 친구 부부와 함께 그곳을 다시 찾았다. 아직 비포장 도로이지만, 예전보다 흙이 많이 다져져서 길이 부드러워졌고, 사인판도 생겼고, 무엇보다도 화장실을 새로 만들어 놓아서 편리했다. 멀리서 보니, 남자 한 명이 막 탕에서 나오는데, 여전히 수영복이나 반바지를 입지 않고 있었다. 친구 남편은 맨몸으로 온천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신기한지, 다음에 미국에 오면 또 오고 싶다고 한다. 이곳은 아마도 자유로운 영혼들이 자주 찾는 곳인가 보다.

<박희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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