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아내와 신혼집에서 같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거의 매일 두 번씩 서로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오늘은 뭐 먹지?” 요새는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면 하루에 가장 고통스러울 때가 메뉴를 고민할 때다.
아내의 권유로 참여하고 있는 북클럽 ‘죽은 루이스 사회’에서 Problem of Pain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우리 부부는 이 제목에 착안해 메뉴 선정의 고통을 Problem of Menu(POM)라고 부르며 점심 그리고 저녁때가 다가오면 서로에게 문자나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내면서 같이 음식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코비드로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출퇴근과 사람 만나면서 쓰던 시간은 대폭 줄었지만, 밥을 만들어 먹는 것에 하루의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 같다. 결혼 전 둘 다 바쁘다는 이유로 하루에 한 끼도 해 먹지 않던 날이 많았는데, 팬데믹 이후로는 거의 매일 밥을 해 먹고 있다.
처음에는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는 재미도 있었는데, 조금씩 이런 흥미도 사라지면서 아내는 요리책을 나는 유튜브를 찾아보면서 오늘도 메뉴 고민을 하고 있다.
한동안 식단을 짜서 이러한 메뉴 고민을 덜어보려고 노력했으나 이 또한 아직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지 몇 번 시도하다 다시 매일 POM 하는 상태로 돌아왔다.
음식을 주문해서 먹으면 되지 않을까 반문할 수 있지만, 배달 음식 또한 결국에는 POM이라 무엇을 시켜먹을까 고민하다 그냥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꺼내 뭐든 만들어 먹을 때가 점점 잦아지고 있다.
냉털(냉장고 털이)이라고도 불리는 이 과정에서 우리가 종종 해 먹는 요리가 있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대접하는 잔치국수. 잔치국수가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간단할 것 같은데, 만드는 사람의 입장이 되니 재료들을 하나하나 준비해야 하다 보니 만드는 과정에서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한국 음식이 기본적으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딱히 먹을 것이 생각나지 않을 때 냉장고에 돌아다니는 온갖 남은 자투리 야채와, 고기 그리고 김치를 볶아 멸치육수에 담긴 국수와 같이 잔치국수를 만들어 먹는다.
보이기에는 간단해 보이는 잔치국수도 은근히 손이 많이 들어가 우리는 농담조로 웃으면서 “간단하게 잔치국수나 먹을까?” 이야기하곤 한다.
음식을 놓고 이렇게 같이 고민하면서 우리는 둘이 같이 고민하는데 쉽지 않은데, 부모님 세대나 조부모님 세대에서 음식을 전담했던 어머님들의 메뉴 선정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주면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도 하게 되지만, 부모님 곁을 떠나기 전 내가 먹었던 수많은 끼니들의 다양한 음식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부터 세상의 어머님들이 다시 위대하고 존경스러워질 뿐이다.
잔치국수의 유래를 찾아보니, 조선시대에는 밀가루가 귀해 결혼식 같은 날에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나는 우리집에서 먹는 잔치국수를 통해 과거에도 잔칫날 이후 남은 반찬 처리를 비빔밥처럼 재료들을 재활용하면서 이런 형태의 음식이 탄생된 게 아닐까 싶었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이제는 결혼식도 팬데믹 때문에 식사 대접하기도 어려워져 먹기 힘든 잔치국수. 결코 간단하지 않지만,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연습을 통해 코비드가 사라지면 지인들을 집에 초대해 ‘간단하게 잔치국수’ 해 먹는 날이 빨리 오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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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호성 국제기구 개발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