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요한 공간에 하나의 촛불이 밝게 빛나고 있다. 나의 생명의 뿌리를 상징하는 촛불이다.
눈을 감고 모든 생각을 놓아버리면, 고요한 내면의 공간이 나타난다. 마음으로 하나의 촛불을 켠다. 촛불을 바라보며, 부처님의 자비를 생각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평안하라. 안락하라.” 한순간이라도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자비의 마음을 일으키면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 공덕이 된다. 자비로운 한 생각은 자비로운 행이 되고 마침내 진리를 깨닫게 한다고 지혜로우신 분들은 말씀하신다.
촛불을 바라보면 마음은 고요하고 밝아진다. 단순한 이 모습은 아름답다. 우리의 마음이 바라보는 것이 삶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언제 어느 곳 어떤 상황에서나 바라는 것(밝은 면)을 바라보라고 한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밝은 촛불을 보고 희망을 생각하는 것은 한 해의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해마다 설날에 촛불을 켜는 촛불재를 한다. 초에 불을 켜면서 마음의 불을 밝히는 의식이다. 마음의 불을 밝힌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와 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중생의 ‘나’가 부처의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다. 내면의 전능한 지혜가 나의 삶을 이끌어가게 하는 것이다.
촛불을 켜고 우리에게 본래 밝은 지혜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밖에 있는 어떤 위대한 존재에게 뭔 가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고요하게 빛나는 촛불을 바라보며 나의 마음을 시끄럽게 하는 모든 생각들을 비우고 ‘나는 누구인가?’ 를 참구하는 것이다.
촛불은 고요히 밝은데 끝없는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마음이 생각을 따라 달아날 때마다 알아차리고 다시 촛불을 바라본다. 한참 그러다보면 차츰 생각이 줄고 마음은 생각을 따라가지 않게 된다. 이것은 처음에는 어렵다. 그러나 반복해서 하면 된다. 마음이 생각으로 부터 편안해지면 기쁨이 생긴다.
고요한 마음의 공간에는 촛불이 있고 촛불을 바라보는 ‘내가 본다는’ 마음이 있다. 여기에서 촛불과 바라보는 마음이 나타나는 바탕 허공을 생각 할 수 있다. 이 마음의 허공을 주시자(바라보는 자, 모습 없는 근본 마음)라 한다.
이것은 간단한 논리인데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주시자가 ‘참나’이다. 주시자가 되면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의 이원성이 사라진다. 이것이 촛불을 켜는 의식의 근본 뜻이며,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촛불을 밝히는 본뜻이 ‘참나’를 밝히는 것이지만, 우리는 거기에 이르는 바른 길을 닦아야 한다. 먼저 악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 자기를 위해서다. 생명에게 해로운 일을 하는 것을 삼가해야 한다.
악행은 마음의 빛을 가려 어둡게 한다. 그리고 모든 선행을 실천해야 한다. 형편따라 베풀고 살아야 한다. 바르게 사는 덕행을 닦아야 한다. 그러면 마음이 밝아지고 공덕이 쌓여서 행복하게 살게 된다. 나아가 ‘내가 한다’는 자아의식을 버리는 수행을 닦아야 마음의 촛불을 온전히 밝힐 수 있다.
마음을 밝히는 길은 많다. 그리고 수많은 다양한 공덕이 있다.
근래에 입적하신 한 노스님은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의대에 다니다가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남양군도의 밀림에서 미군의 포탄 파편에 부상을 입어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 혼자 밀림에서 헤쳐 나오는데 등불이 나타나 길을 안내해서 살아났다. 해방된 해에 법어사에서 출가하였다.
그때에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불심이 깊은 어머니는 눕지 않고 잠자지 않고 앉아서 오로지 지장보살 염불을 하면서 아들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도하셨다고 한다. 아들을 죽음에서 건져낸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는 마음의 불을 밝힌 공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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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공 스님/한마음선원 뉴욕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