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결명자차
2021-02-10 (수)
박희례 (한의대 교수)
결명자는 간을 보호하고 눈을 밝게 해주는 씨앗이다. 나의 외갓댁이 있는 목계는 남한강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날씨가 온화하고 결명자를 많이 재배하는 곳이다. 내가 어렸을 때, 매년 가을 어머니는 친정에 다녀오실 때마다 외할아버지께서 직접 재배하신 결명자를 많이 가져오셨다. 특히 겨울에는 따뜻하게 끓여 보리차 대신 우리 일곱 남매에게 눈을 밝게 해준다며 매일 먹이셨다. 그런데 어린 나는 그 끓인 물이 너무 써서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곤 했다.
결명자 덕분이였는지, 나는 어려서부터 50대 중반까지 안경없이 읽고 쓰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3년 전부터 글씨가 흐릿하게 보여 독서할 때 사용할 안경을 맞추러 검안과에 갔는데, 백내장이 심하다고 안과를 소개시켜 주셨다. 안과 원장님이 검안을 하고 나서, 백내장이 급한 게 아니고, 왼쪽 눈에 망막 박리가 일어났다고 망막 전문의에게 응급 수술을 받아야 된다며, 그 자리에서 직접 전화로 예약을 해주셨다.
그후 지금까지 양쪽 눈의 수술과 검사를 하기 위해, 망막 전문의와 백내장 전문의에게 두달에 한번씩 번갈아가며 진료를 받는, 길고도 지루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지난주에는 운전면허증 갱신과 리얼 아이디를 신청하러 DMV에 갔다가, 시력이 나빠 운전 불가 판정을 받고, 안과 의사의 소견서에 사인을 받아오라는 서류를 받아왔다. 완전히 장애자가 된 기분이라니. 그래도 다행인 것은 멀리 보는 안경을 맞추어서 시력이 나오면 된다고 해서 어제 새 안경을 맞추고 왔다.
그동안 정말 아주 가끔 생각날 때마다 상비하고 있는 결명자를 끓여 마셨다. 그런데 꾸준히 복용하지 않아서인지 시력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이다. 우리 몸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위가 있겠냐만서도 눈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시력을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몸이 천냥이면 눈은 구백냥이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컴퓨터 게임, 유튜브 시청을 줄이고 눈을 보호해야 된다고 항상 잔소리를 해야 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눈에 좋은 당근, 국화차, 결명자차를 사랑해야겠다. 이 글을 쓰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결명자차를 끓여 마시기 시작했다.
<박희례 (한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