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들은 문구 중 가장 재밌는 구절은 “라떼는 말이야”라는 것이다. 이는 5~60대 초반의 직장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들 앞에서 “나 때는 말이야” 하며, 옛날엔 어땠다며 주름 잡는 모습을 풍자한 걸로 ‘꼰대’에 빗대어 사용된다. 어떤 상사가 대화 중 이를 한 번 얘기하면 젊은 세대끼리는 눈짓으로 라떼 한잔! 또 이를 2번 반복하면, 부하 직원들은 “아아~ 오늘 라떼 두 잔 마셨다!”느니 하며 자기들끼리 농담한다고 한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과자까지 판매하고 있고, 이 구절이 쓰여져 있는 머그컵, 티셔츠도 불티나게 팔린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우스갯소리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라떼’세대들은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주로 한국에서 활발한 사회생활을 했던 세대로서 우선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문화속에서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고 성실함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상사보다 무조건 미리 도착해 자리에 앉아있는게 예의였고, 회식을 하자고 하면 언제든 따라가는 것이 관례였으며, 가정사보다는 회사일을 택하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라떼 세대들은 머리에 얼마나 많은 ‘무스’를 발라 단정히 빗어 넘기고, 빳빳하게 다린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빛나는 구두를 신은 모습이 자신의 능력과 비례되는듯 너도 나도 직장인들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요즘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를 비롯한 젊고 성공한 세대들이 선보인 회사 패션, 즉 후드 티에 청바지를 입고 오는 것이 능력있는 창업자나 벤쳐캐피털리스트의 이미지를 꾀한다. ‘이런 옷을 입어야’ 창의력이 나오는 양 요즘 스타트업이나 ‘진보적이고’ ‘앞서간다’는 기업들은 이러한 차림을 흔쾌히 허용한다. 따라서 위웍(WeWork) 같은 공유 오피스나 판교 테크노밸리 같은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이 모여있다는 도시에 정장 차림으로 회의에 가면 오히려 더 어색하다.
이와 관련해 본 영화 중 인상 깊에 본 ‘인턴’이란 영화가 있다. 요즘 핫하다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해 대박이 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젊은 여성 창업자, 앤 해서웨이가 나이 지긋한 70살 정도의 은퇴한 노인, 로버트 드 니로를 인턴으로 채용하며 겪는 이야기이다. 이 노인은 처음 일하러 가는 날, 단정히 머리 빗고 면도를 하고 윤기나게 신발을 닦고는 깔끔한 양복을 입고 집을 나선다. 사무실에 도착해보니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들이 우글거리고 머리에 헤드폰을 끼고 치마를 펄럭이며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여직원들, 위계질서나 상하 조직이라고는 알 수 없는 열려있는 오피스 구조, 그리고 사무실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젊은 여자가 바로 창업자이고 CEO였다.
하루는 모두 퇴근하고, 주어진 일을 끝내려고 남아 일하는 할아버지 인턴은 사무실에 CEO와 단 둘이 남게 되고 두 사람은 이 기회로 알게 되어 CEO가 회사와 가정 문제로 난관에 쳐했을 때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인생을 바탕으로 아낌없는 조언을 한다. 도대체 이런 할아버지 인턴이 와서 자신의 회사에서 어떤 도움을 줄지 무척 회의적이었던 CEO는 점점 마음을 열고 의지하며 여태껏 아무도 자신에게 주지 못했던 지혜로운 충고를 고마워한다. 결국 CEO는 회사와 가족 둘다 지키게 되는 마음 따뜻해지는 영화다.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한지 벌써 5-6년 된 걸 보면,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급격한 세대 교체에 모두 버거워하는 것 같다. 상사를 모시는 입장에서 사회의 이런 변화가 편해져서 좋기도 하지만, 어떨 땐 어린 직원들을 보며 그들의 행실에 놀라기도 한다. 점점 윗세대들에 대해 개인의 능률을 확인하기보다는 출퇴근 시간에 연연하는 한심하고 따분한 세대라고 생각하는 현상을 보니 나 역시 앞으로 향후 관리급이 되어 잘 할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영화에서 처럼 ‘라떼’ 세대는 진부한 세대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 후에 귀기울여보면 우리는 그간 놓친것에 대한 새로운 발견, 그 당시의 우스웠던 에피소드, 또 사회 배경에 대해 들어보며 이 세대가 우리에게 주는 지혜를 조화롭게 받아 들일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글을 쓰는 나 조차도 “저 꼰대”라는 말을 들을까 사뭇 우려를 하면서도 그것이 그리 싫지 않다. 꼰대란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연륜과 나름 살아온 가치관과 미덕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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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진 국제개발금융 투자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