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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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

2021-02-03 (수) 석인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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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장례식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두려움을 달래줄 뿐 아니라 일상으로 회귀할 수 있는 위안을 주며 ‘공동체 화합’이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다. 시대, 사회, 신앙에 따라 장례식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해왔지만, 망자를 저승으로 보내주고 남은 이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점에서 장례식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의식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게다가 한국인들에게 장례문화는 조금 특별한 구석이 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에서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장례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북과 꽹과리 등 악기가 동원돼 출상 전후에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도 하며 놀이판을 벌인다. 과거 어느 외국인 기자가 한국의 장례식장을 직접 참석해보고 ‘축제와 비슷하다’며 놀랐던 것처럼 오랜 기간 한국의 장례문화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슬픔을 다른 감정의 형태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장례식은 점차 간소화 됐다. 과거 장례 절차는 대개 집안의 어른들이 주도했으나 오늘날 장례는 상조회사에서 진행한다. 과거처럼 밤새 술판을 벌이며 노는 일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인해 장례식은 급격하게 축소됐다. 코로나19 시기에 장례식장에는 조문객이 없을 뿐더러 가족들과 친인척 이외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 됐다.


미 전역 코로나19 확산의 진앙지로 꼽히는 남가주에서는 장례식을 치르는 일 조차 어려워졌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돼 숨지는 주민들이 연일 급증하면서 장의사와 묘지들에 시신이 몰려 사망자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최장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장례대란’<본보 2월1일자 보도>이 펼쳐진 것이다. 유족들은 고인의 마지막 임종도 지켜보지 못할 뿐더러 장례식 조차 제때 치르지 못하는 참담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최근 CNN의 한 기자는 부모님을 코로나19로 잃은 한 여성이 병원 주차장에서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취재하며 눈물을 흘렸다. 기자는 기고문을 통해 “주차장에서 부모 장례를 치를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분노가 일었다”며 “방역 수칙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로병사는 인간의 숙명이고, 우리는 누구나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는 순간을 마주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통이다. 하지만 적어도 장례식 만큼은 숭고하게 치를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보장돼 살아남은 이가 망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넬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정부의 보건 지침을 준수하고, 차례대로 백신 접종을 하는 일. 그 기본만은 구성원 모두가 지켜내는 사회. 그런 사회일 때 장례식의 순기능은 다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석인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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