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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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집콕 생활

2021-01-30 (토)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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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코로나가 발발한지도 일 년이 넘었다. 코로나를 겪으며 지난 사계절을 꼬박 집에서 보내고 나니 집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이전에는 회사 다녀와서 잠만 자던 집이었는데 이제는 집의 구석구석이 보이고 애정이 간다. 오래된 집이지만 조금 꾸미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상점들은 폐점하는 곳이 속출하지만 홈디포는 이 시국에도 문전성시라니 사람들 마음이 다 똑같은가 보다.

관리하기 귀찮기만 했던 애물단지 수영장은 지난여름 우리의 최고의 놀이터였다. 수영장이 없었으면 그 긴 여름을 물놀이 한번 못해보고 지날뻔했다. 강과 바다로 피서는 떠나지 못했지만 새파란 수영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다. 아깝게만 느껴지던 수영장 관리비가 전혀 아깝지 않았던 한 해였다.

작은 화단도 계절마다 향긋한 꽃을 피워대며 우리의 눈과 코를 즐겁게 해 주었다.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전보다 물도 정성스레 주었다. 정성을 들이니 이에 화답하듯 더 잘 자라는 것 같이 느껴졌다. 어머님, 아버님이 오셔서 뒷마당에 레몬나무 가지치기를 하셨다. 작년 한 해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았더니 맛없는 레몬만 달리던 나무다. 아무래도 오래도록 방치해두었더니 병이 들었던 모양이다. 풍성했던 나무가 헐벗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한번 가지치기를 해주면 또 금세 가지가 뻗고 건강한 레몬이 열릴 것이라고 한다. 오늘 보니 거짓말처럼 새싹이 돋아나 있다. 따뜻한 봄이 오면 또 주렁주렁 탐스러운 레몬이 달릴 것 같다. 이 난리통 속에 아이를 낳아 고생만 시키는 것이 아닌지 미안했는데 화단의 꽃과 나무들도 새 생명을 내어 놓고 번식함에 게을리하지 않는데 나도 이 세상에 작은 생명 하나 낳아 키워내는 것이 뭔 대수 인가 싶다.


요즘 유행하는 홈카페도 열었다. 예쁘게 먹고 마시는 날이 많아졌다. 이왕 삼시세끼 집에서 먹게 된 것 나 자신을 조금 융숭히 대접해주고 싶었다. 손님 올 때만 꺼내는 예쁜 접시에 디저트를 담아 먹고 찬장에서 잠들고 있던 화려한 찻잔도 꺼내 커피나 차를 우려 마신다. 가끔은 꽃도 한 다발 사와 테이블 위에 꽂아 놓으니 웬만한 카페 분위기가 난다. 아이가 잠들었을 때 가끔씩 개장하는 홈카페이지만 이 잠깐의 시간이 지친 육아에 큰 위안이 되고 활력이 된다.

가구 위치도 요리조리 바꿔본다. 침구를 철마다 갈아 주었더니 호텔 못지않은 분위기가 난다. 온라인 쇼핑을 통해 들인 작은 인테리어 소품들도 어울리는 자리에 두니 분위기가 확 살고 눈이 즐겁다. 여행은 가지 못하지만 집안에서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새로운 곳에 온듯한 느낌을 내본다. 언제쯤 예전처럼 자유로이 여행을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나마 여행 못 가는 설움을 달래 본다.

집에만 처박혀 있으니 코로나 블루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제 백신도 개발되어 공급되고 있으니 팬데믹의 끝도 보이는 것 같다. 우울해있지만 말고 24시간 생활하는 본인의 공간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불평만 하다가는 한도 끝도 없다. 지금의 자리에서 작은 행복들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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