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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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보유국’

2021-0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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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 대원군 이하응은 고종의 친아버지다. 그 대원군이 권력의 절정에 있던 때의 일화다.

하루는 대원군이 성대한 연회에 초대됐다. 명색이 글줄을 안다는 사대부들의 연회인 만큼 시가 빠질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양보해 대원군에게 먼저 한 수 읊기를 청했다. 마지못한 척, 대원군이 한 마디 뽑으려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좌중은 조용해졌다. 그 순간 마당 한 구석 말석에 앉아 있던 한 백의의 서생이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쳐댔다. “이백, 두보도 울고 갈 명 구절입니다.”


주변의 아첨에 이제는 꽤 익숙해진 대원군이지만 이건 너무했다싶어 한 마디 했다. ‘아직 시작도 전에 무슨 해괴한 짓이냐’고.

그 서생은 이렇게 말했다. “대감의 시 읊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영상을 비롯해 온 좌중이 칭찬을 해대면 저 같은 사람의 칭찬을 들을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미리 한 것뿐입니다.”

그 서생은 어떻게 됐을까. 괘씸죄로 치도곤이라도 맞았을까. 아니다. 대원군은 그 ‘대담한 아첨’에 마음이 끌렸는지 한 고을 사또 자리를 하사했다는 후문이다.

당 태종은 중국역사에서 최고의 명군으로 뽑히는 황제다. 그가 어느 날 궁에서 산책을 하던 중 나무 한 그루를 보고 좋은 나무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첨으로 당대에 이름을 떨쳤던 우문사급이란 자가 이를 보고 황급히 달려와 몇 시간 동안 그 나무에 대해 칭찬을 늘어놨다.

당 태종은 그런 그를 보고 ‘너야 말로 아첨꾼이구나’라고 질타했다. 그 우문사급은 어떻게 됐을까. 궁에서 쫓겨났을까. 아니다. 파직은커녕 직급은 오히려 수직상승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아첨은 권력자의 맘에 드는 비결이다. 그래서인가. 왕정시대는 말할 것도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울려 퍼지는 것이 용비어천가에, 각양 아첨의 언어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로 선출되자 바로 빅토리아, 엘리자베스 1세 등 영국 여왕들에 빗댄 ‘박비어천가’가 나왔다. 그게 2012년의 일이다.

서희에, 이순신 장군이 동원됐다. 안중군 의사도 거론 됐고, 심지어 예수와도 비교됐다. 문재인 대통령, 더 나가 문재인 정부, 그리고 문재인의 사람들에 대한 칭찬으로.


문재인 정부가 한 역할을 서희와 이순신 장군에 비유하고 나선 인물은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반일감정을 고취시키며 항일에 앞장 선 문재인 정부는 구국의 영웅인 서희와 이순신 장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자화자찬성의 아부의 말을 늘어놓았던 것.

그 조국의 처 정경심 교수가 온갖 비리 유죄확정과 함께 4년 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예수가 동원됐다. 문빠를 대변한다고 할까. 그런 한 칼럼니스트가 조국 전 법무장관을 십자가를 진 예수에 비유하고 나선 것이다.

그에 뒤지지 않는 아첨의 언어는 군 복무 특혜 혐의를 받고 있는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서모씨를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을 몸소 실천한 분으로 치켜세운 것이다.

여당의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서씨가 다리가 아픈데도 군 복무를 위해 병가를 얻어 수술을 받았으니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것이 아니냐며 강변을 하고 나선 것.

새해 들어서도 역대급에 가까운 아첨 릴레이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다”는 가슴 뛰는 발언이 나와 하는 말이다.

서울시장 보선에 뛰어든 박영선 전 중기부 장관이 문 대통령 생일을 맞아 페이스북에 올린 말로 “벌써 대통령님과 국무회의에서 정책을 논하던 그 시간이 그립다”며 절절한 사모의 정도 곁들여 토로한 것.

한 가지 걱정이 앞선다. 아첨의 끝판 왕이랄까. 수령맹종주의 북한에서도 일찍이 못 본 명언(?)이다. 그러니 북한의 선전선동 책임자가 그 책임추궁과 함께 혹시 숙청되지 않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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