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대 대통령 취임식장은 썰렁했다. 국가 최대의 축제인 대통령 취임식에는 보통 초청인사가 20만, 전국에서 모여드는 인파가 많으면 수백만에 달한다. 이번에는 초청하객 불과 1,000명에, 군중이 운집해야 할 내셔널 몰은 19만개의 성조기로 채워졌다. 통행이 금지된 텅 빈 거리를 차지한 건 중무장한 주 방위군과 철책, 바리케이드, 검문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극우집단 증오바이러스를 근절해내지 못해 생긴 서글픈 현실이다.
그럼에도 이날은 축제의 날. 미국인구의 절반은 악몽 같던 트럼프 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에 환호하며 축배를 들었다. 문제는 그것이 절반의 축제라는 사실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 앞에 놓인 높고 험한 고지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식 연설에서 다시 한번 ‘단합’을 강조했다. 대선 캠페인 때부터 그가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하나 된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제반정책의 기본이 될 것이다.
“우리는 위기와 도전의 역사적 순간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단합’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이 순간을 (통합된) 미합중국으로서 맞아야 합니다.”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트럼프의 억지를 공화당 유권자의 70%가 믿을 정도로 깊은 정치적 불신, 1년 만에 40만 생명을 앗아가고 경제를 파탄 낸 팬데믹, 그 여파로 더욱 심해진 빈익빈 부익부, 극렬 백인우월주의 세력의 준동 … 불안과 두려움은 분노를 확산하고 분열을 부추기면서 겹겹의 난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골 깊은 분열의 시대,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대통령은 어떻게 다독여서 통합의 고지에 이를 것인가. 최근 퀴니피악 대학 조사에 의하면 유권자들의 56%는 회의적이다. 바이든이 통합하기에 분열은 너무 깊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언제 분열 없는 호시절을 살았던가. 미국의 역사는 분열의 역사이다. 백인과 흑인노예라는 이질적 구성원으로 이 나라는 애초에 분열의 불씨를 안고 탄생했다. 노예제도를 둘러싼 극한 대립과 분열은 결국 남북전쟁으로 폭발했다.
미국의 태생적 문제는 또한 ‘시민’에 대한 인식이다. 이 나라에서 태어나도 여성과 흑인은 ‘시민’이 아니었다. 백인남성 아닌 사람들이 참정권을 얻고 시민 대접받은 것은 1세기 전부터이다. 여성은 1920년 수정헌법 19조, 흑인은 1964년 수정헌법 24조가 비준되면서 ‘시민’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섰다. 여성참정권 운동 수십년, 노예해방 후 흑인 민권투쟁 근 100년은 목숨 건 항거와 갈등의 역사였고 사회적 분열은 상상을 넘었다.
아울러 분열의 핵심이 되는 것은 미국의 정체성 논란이다.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에 대해 두 입장이 대립해왔다. 첫째는 미국은 기본적으로 백인기독교 국가라는 입장이다. 이 기본 틀이 무너지면 더 이상 미국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둘째는 미국은 이민의 나라라는 입장이다. “지치고 가난한/ 자유를 숨쉬기를 열망하는 무리들을” 모두 품어 안는 다양성의 나라라는 시각이다. 두 입장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부딪쳐왔고, 트럼프가 불붙인 이 시대의 분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역사는 분열과 갈등, 위기의 순간들을 넘기며 발전한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 100년 후인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은 절정에 달했고, 이어 45년 후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탄생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불온한 꿈들이 숱한 희생을 바탕으로, 느리지만 실현되면서 역사는 발전해왔다.
하지만 역사는 직진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작용과 반작용을 거듭한다. 소수계, 이민자를 끌어안으며 오바마가 몰고 왔던 변화의 바람은 반작용을 불러왔다. 극우 기독교 백인진영을 아우르는 트럼프 시대의 개막이다. 왼쪽 끝으로 치달았던 역사의 추는 반동으로 오른쪽 끝으로 튕겨갔고, 이제 다시 그 반동으로 안정적 상태를 추구하고 있다. 정-반-합이다. 역사의 이 민감한 시점을 바이든 대통령이 이끌게 되었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다.
바이든은 노련한 정치인이다. 상원의원 36년, 부통령 8년이라는 특별한 경험은 그의 통치에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민주/공화 진영을 뛰어넘는 폭넓은 교유 관계, 그리고 경청하고 타협하는 지혜이다. 바이든 만큼 상원에 넓고 끈끈한 인맥을 가진 대통령은 린든 존슨 이후 없었다.
그는 오랜 정치경력에 비해 특별히 드러나는 업적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의 모나지 않고 튀지 않는 성품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분열의 시대에는 그런 부드러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옆집 할아버지 같은 온화한 이미지와 타고난 친화력, 웬만해서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차분함, 쉽게 원칙을 저버리지 않는 소신 등은 신뢰감으로 이어지면서 의회를 움직이고 국민들의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는 데 큰 몫을 할 것이다.
정치는 끝없는 타협과 조정의 과정. 바이든의 인맥과 친화력이 양당 간 얼어붙은 대화의 물꼬를 트고 소통의 길을 열어내기를 바란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이견을 의견으로 존중하면서 분열의 골이 메워지기를, 다시 미국다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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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