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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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

2021-01-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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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의 말 한마디는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에 대한 자의식이 없거나 희박할 경우 그 폐해는 때로 치명적이다.

그 케이스의 하나가 마오쩌둥이 참새와 관련해 한 말이다. 1958년 마오쩌둥은 농촌 순방 중에 참새를 노려보며 한마디 했다. ‘저 새는 해로운 새다’고. 식량이 부족한데 참새가 곡식을 쪼아 먹으니 한마디 한 것이다.

때는 공산혁명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마오의 그 한 마디에 중국 천지가 뒤집어 졌다. 정부기관은 참새박멸의 당위성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참새섬멸 총지휘부라는 것도 만들어 졌다. 그리고 10억이 넘는 인구가 냄비와 세숫대야를 두드리며 전국 방방곳곳에서 참새 소탕작전을 벌였다.


참새는 멸종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대신 메뚜기를 비롯한 해충이 창궐하면서 농작물은 초토화됐다. 절대 권력자의 말 한 마디가 수 천 만이 굶어죽는 대참사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권력자가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 역시 커다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응당 한 마디 해야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아무 말이 없다. 그 경우 권력자는 그 사건을 용인하거나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에 대한 암묵적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비쳐져서다.

권력자는 그러므로 한 마디 말에, 또 행동에 천금처럼 진중해야 한다고 한비자는 일찍이 경고했다. 한비자 내저상편에 나오는 ‘明主愛一嚬一笑(명주애일빈일소)’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현명한 군주는 말과 행동은 말할 것도 없고 한 번의 찡그림이나 한 번의 웃음도 아낄 정도로 표정관리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진 건 다름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를 파괴하고 있다. 이런 초대형 비리사건들이 최고 권력자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서다.

그 첫 케이스가 울산시장 청와대 개입의혹 사건이다. 현 송철호 울산시장은 알려진 대로 문재인대통령의 ‘절친’이다. 그 절친은 울산에서 국회의원, 시장선거 등 모두 8번 출마해 모두 낙선했다.

그리고 실시된 2018년 울산시장선거. 송철호 후보자는 8전9기 끝에 당선됐다. 그런데 사달이 났다. 검찰이 대통령비서실 7개 조직과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 등이 개입한 혐의를 잡고 수사해 기소한 것.


왜 청와대 비서실이 총동원되다 시피 했을까. “송철호 당선이 소원”이라고 문 대통령은 말해왔다. 답은 여기서 찾아지는 것이 아닐까.

김학의 사건도, 원전 월성 1호기 사건도 그렇다. “검찰과 경찰이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며 문대통령은 ‘김학의, 장자연, 버닝썬’사건의 강력한 수사를 촉구했다. 월성 1호기의 경우 문 대통령은 ‘언제 폐쇄하냐’고 보좌관에게 물었다.

그게 시그널이었던가. 법무부와 일부 친문 검사들이 총동원됐다. 출국금지 서류까지 불법으로 조작하면서. 그러니까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법무부 공무원들이 태연히 법치를 훼손시키는 국기문란 범죄에 가담한 것이다. 월성 1호기 폐기 사건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 문대통령이 또 한 마디 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입양 아동 학대 사망과 관련한 방지책에 대해 ‘입양 이후 일정 기간 이내 취소하거나 입양 아동을 바꾸는 방안’을 제시 한 것.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입양은 아이를 골라 쇼핑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국민 청원이 바로 올라올 정도로. 어떻게 보아야 하나. 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으로 보아야 할까.

아니, 그보다는 아이를 상품 보듯 한 그 말에서 드러난 대통령이라는 사람의 인성과 가치관. 그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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